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워킹푸어도 ‘유명환’도 없는 사회를

opengirok 2010. 9. 15. 11:13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우리나라에서 시민운동이 막 꽃피기 시작하던 시절에 어느 시민단체에서 낸 책자의 제목을 잊을 수 없다. “일한 만큼 대접받는 우리 사회 만들자.”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슬로건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요즘 정의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사람들이 일한 만큼만 대접받아도 어느 정도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일한 만큼 대접받기는커녕 일을 해도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워킹푸어(working poor)’라고도 불리고 ‘근로빈곤층’이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임대주택에라도 들어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 ‘사교육이 넘치는 세상에서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낮은 임금 때문에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호소한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해서 받는 급여로 생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요즘에 시간당 4110원, 주 40시간 노동해서 월 85만8990원을 받아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을 확보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빈곤은 대물림될 수밖에 없고,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빚더미에 올라서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법은 이런 비현실적인 최저임금을 고집하고 있다. 2011년에도 불과 5.1%가 오를 뿐이다.


일한만큼 대접 못받는 빈곤층

그나마 최저임금법도 안 지키는 사업주들도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서 적발된 건수만 해도 2009년에 1000건이 넘었다. 적발되어도 솜방망이 조치에 그치기 때문에 최저임금법 위반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을 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런 사회를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살기가 힘든데 부모덕에 좋은 자리에 취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이번에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비리가 불거졌지만, 사실은 전국에 수많은 ‘유명환’이 있다. 정부부처가 아닌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 정부부처보다 허술한 것이 공기업·공공기관인데 말이다.

지역에 가면 들리는 이야기들이 더 흉흉하다. 어느 지역에 가면 지방자치단체장의 힘을 배경으로 공무원이 된 사례를 들을 수 있고, 어느 지역에 가면 시청 산하 기관에 지역유력자의 자녀들이 수두룩하게 특채되어 있다고 한다. 사립학교의 교사채용 비리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나라에서 ‘공정한 사회’를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공정한 사회를 입에 올리려면 최소한 두 가지 방향의 조치가 필요하다.

전국 곳곳에 수많은 특채비리

첫째,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사회,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교육과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말장난이 안 되려면 예산을 확보하고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교육격차를 해소할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이번 기회에 고위공무원들과 정치인·지역유력자들이 저질러 온 인사비리를 전면적으로 조사해서 처벌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인사비리를 전면조사하는 특별기구를 한시적으로 둘 필요도 있다. 부동산투기·위장전입과 같은 단어들이 더 이상 인사청문회의 쟁점이 되지 않도록 공직자들을 일상적으로 검증하는 것도 필요하다. 형식적인 감사나 하고 솜방망이로 처벌해서는 뿌리깊은 부패구조를 제거할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필요하다. ‘유명환’을 없애지 않고서는 ‘공정’을 입에 담을 수 없지만, ‘유명환’만 없어진다고 해도 워킹푸어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진짜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유명환’도 없고 워킹푸어도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