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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경향] “정보 공개가 세상을 바꿉니다”

opengirok 2009. 10. 7. 16:06

창립 1주년 맞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활약상



기자는 영화를 볼 때 시민단체, 비정부기구(NGO)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면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데이비드 게일>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분한 데이비드 게일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대학의 ‘잘나가는 교수’인 동시에 ‘데스워치’라는 사형제폐지운동의 활동가였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대한민국의 가상도시 ‘심천’의 환경단체인 ‘푸른심천21’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외화에 포착된 시민단체의 모습은 한국과 같으면서도 사뭇 다르다. 벽에 해당 단체가 주장하는 캠페인과 관련한 포스터가 걸려 있고 싸구려 임대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사람들의 네트워크나 단체 이슈를 끌어내는 방법, 활동가들에 대한 사회나 전문가 집단의 인식에서 차이가 난다.

“‘쌍용차 사태’ 때 경찰 1인당 진압장비 200만원이었다.”(연합뉴스), “전경 한 명 무장에 51만원…작년 진압장비 비용 급증”(경향신문), “전자충격기 구입비 5년동안 60억 썼다”(한겨레), “경찰 진압 장비는 얼마?”(조선일보)
지난 9월 15일과 16일 언론들이 쏟아낸 기사다.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근거는 하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하승수, 이하 정보공개센터)가 경찰청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해 받아낸 ‘경찰의 호신 및 진압용품 구입현황(2005~2009년)’ 자료를 토대로 한 기사였다. 이 단체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무실 위치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132번지. 많이 들어본 주소다. 참여연대 건물이었다. 정보공개센터는 참여연대 1층에 세들어 있었다. 지난해 광우병범국민대책회의가 있던 자리다. 전진한 사무국장을 만났다. “1층에 오는 것이 의미있다고 봅니다. 일종의 분리독립이고 ,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친정’이니 어려울 때 읍소도 할 수 있고….임대료는 ‘파격적으로 싸게 해서’ 들어왔습니다. 정보공개센터의 가장 큰 후원자는 어떻게 보면 참여연대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참여연대 출신·언론인 등 주축
소장을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는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전 국장도 투명사회팀(대외적으로는 정보공개사업단) 간사를 맡았었다. 이재명 한겨레 기자,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연구팀장,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이 당시 멤버였다. 그게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현재 제주대 법학부 교수로 있다. 정보공개센터 일 때문에 1주일에 2, 3일을 서울에서 보낸다. 전 국장의 말. “하 소장이 저희 센터 때문에 엄청 고생했어요. 활동비 한 푼도 못받고 엄청난 희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은 지금도 이어진다. “(하 소장이)사람 한번 잘못 만나 평생 고생하고 있는 셈이네요.”

‘코가 꿰인’ 사람은 또 있다. ‘쌀집아저씨’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김영희 전 PD연합회 회장. 단체 소개를 보면 신승남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와 이승휘 명지대 기록관리학과 교수가 함께 대표를 맡고 있다. “사실 한학수 PD의 꾐에 넘어간 거지요. 한 PD가 저희 소장님 친구예요. 팀에 정보공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인연으로 엮인 거지요.”

전 국장에 따르면 정보공개센터의 첫 아이디어는 KBS의 김용진 탐사전문기자로부터 나왔다. 미국엔 NSA(National Security Archive, 세계를 도청하고 있다는 첩보기관 NSA가 아니다)라는 문서발굴 전문 시민단체가 있다. 한국에도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문제의식이었다.

“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이라고 있어요. 연구원 10주년을 맞이해 아예 관련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를 만들자고 이야기가 되었죠.”

정보공개센터가 창립한 것은 지난해 10월9일. 이제 막 1년 된 신생 단체이다. 160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회원은 현재 320명 수준이 됐다. 창립1주년을 맞이해 후원의 밤을 준비하고 있으며, 후원회의 밤 행사 때까지 회원 수를 400명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후원의 밤 행사에서는 또한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과 정보공개와 관련한 상시적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든지, 신동호 경향신문 기자와 조영삼 전 청와대 국가기록연구사가 함께 쓴 <열려라 참깨>(도서출판 도요새) 책 출판기념식도 열 예정이다.

회원 구성은 ‘정보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지만 지금까지 큰 축은 명지대 기록관리대학원 학생과 언론인, 시민운동단체 사람들이 회원이다. 정보공개센터는 하루에 한 건 정도 새로운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현재 정보공개센터에서 일하는 상근 활동가는 모두 4명. 더 이상 늘릴 계획은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우리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기로 미리 결정했어요. 살아남는 방법은 활동가 중심이 아니라 회원·시민 중심이라는 겁니다. 정보공개청구의 노하우를 확산시키기 위해선 시민교육을 하면 되고, 청구도 전문가들이 하면 됩니다. 우리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것이고.”

제보자 구제 알권리재단 창립 목표
아이디어 회의는 딱히 하지 않는다. 대부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그 결과물을 정보공개센터로 보내온다. 앞에서 거론한 경찰청 정보공개 청구도 한 회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얼마 전 한겨레가 특종보도한 ‘가평군의 정보기관·기자 접대’도 회원의 정보공개 청구로부터 시작했다. ‘Weekly경향’이 다룬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의 일상 모습은 명지대 기록관리대학원 학생들이 청구한 것이다. 단체의 캐치프레이즈는 ‘정보공개가 세상을 바꾼다’이다. 전 국장은 말한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의 활동에서 ‘주장’이 강했는데 우리는 주장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주장의 근거가 되는 ‘팩트’를 찾는 것이 목표예요. 팩트를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달렸겠죠.” 정부가 바뀌면서 ‘정보공개’와 관련한 상황도 달려졌다. “의지가 많이 약화됐어요.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장관을 따라가는 거고, 장관은 또 대통령의 관심에 따라가죠. 이 정부는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비전은 어떻게 잡고 있을까. “창립 때부터 ‘알권리 재단’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공익제보자가 돈방석에 앉는데 한국은 인생 끝나는 걸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변호사도 선임하고, 마땅히 공개해야 할 자료를 비공개 조치를 취했을 때 공개요구 소송도 하고…. 무엇보다 정보 공개와 관련한 체계적 교육이 필요합니다. 20세기는 한글을 못 읽는 것이 문맹이었는데 21세기는 제대로 된 정보를 못 얻는 것이 문맹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바로 문맹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