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22년 첫 전원회의를 열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예년에 비해 더욱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새 정부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억제와 업종별 차등 적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대기업과 같은 최저임금을 지불하면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을 시사했고,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기업이 오히려 고용을 줄이는 결과"가 온다며 최저임금 인상 억제를 시사했다.(관련기사: 최저임금 역주행 조짐... '18억' 한덕수의 후안무치)
재계와 사용자 단체 역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들고 나왔다. 5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류기정 사용자 위원(경총 전무)은 "업종별 구분 적용을 전향적으로 논의하는 최임위가 되길 바란다"라고 발언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사용자 단체에서도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수세적인 처지에 놓인 노동계는 적극 반박하고 나섰다. 최저임금은 생활 보장을 위한 최저 수준을 정하는 것인데, 생활 보장의 최저 수준에 업종별 차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을들의 연대' 토론회를 통해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수수료 규제 등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 최저임금 인상의 물꼬를 트겠다는 방향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최저임금을 두고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한 사람의 임금노동자로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곧장 최저임금과 관련한 글이나 영상 등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2018년에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어느 최저임금 노동자의 눈물>을 보게 되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나 다를 것 없는 현실 속에서 최저임금이 올라도 생활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마트 노동자의 이야기,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이중고를 겪는 자영업자의 이야기와 함께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 구조가 지닌 문제점을 취재한 영상이었다(KBS스페셜 영상 링크).
현장에 가지 않는 위원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의 현장 방문 조사 시간이 단 6시간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의 참여가 매우 부진했다는 사실이었다.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는 현장을 두 번 방문하고 노동자·사용자 집담회를 두 번 열었다. 27명의 위원 중에서 단 한 차례도 참여하지 않은 위원이 5명이었고, 대다수 위원들이 한 두 차례 참석에 그쳤다. 오히려 네 번 모두 참석한 위원이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최저임금법 제18조에는 '의견 청취' 조항이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그 업무를 수행할 때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관계 근로자와 사용자, 그 밖의 관계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라는 내용이다. 이 조항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는 매년 위원, 연구위원, 사무국 직원 등을 현장 사업장으로 보내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고 이러한 내용이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규칙에 규정되어 있다. 이를 '현장방문'이라고 한다.
현장방문을 할 때는 참석한 위원들이 각각 사용자·노동자 측 면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어떠했는지, 경영에 어려움은 없는지, 현재 임금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근로시간이 너무 길지는 않은지, 정부에 요구하는 정책은 없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최저임금제도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현장방문을 하면서 일정에 따라 해당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에서 노동자, 사업주, 전문가, 근로감독관들을 만나 간담회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현장방문을 한 결과는 이후 보고서로 정리되어 보통 1년이 지난 후에 공개되는 최저임금위원회 활동보고서에 실리게 된다(2020년 최저임금위원회 활동보고서 링크).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위원들이 각각 전문가·노동계·재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최저임금의 직접 당사자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최저임금 심의에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로 현장방문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을 통해 공개된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의 저조한 참석률을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공개센터는 그동안 최저임금위원회의 비공개회의를 비판해왔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전혀 알 길이 없이 추후 결정된 액수만 알게 되는 방식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방송을 통해서 단지 회의를 비공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를 대표한다는 최저임금 위원들이 정작 최저임금에 영향받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데 열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어떤 논의를 하는지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최저임금을 심의한다면, 누가 최저임금 심의 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까?
방송을 보고 나서 더욱 궁금해졌다. 현장방문이 중요하지만, 부득이한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최저임금 위원들. 과연 방송이 나간 이후부터는 현장방문에 제대로 참여하고 있을까? 확인해보기로 했다.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에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최저임금위원회 활동보고서가 공개되어 있다. 2021년 최저임금위원회 활동보고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현장방문 결과 보고 내용을 받아 보았다.
먼저 지난 해인 2021년을 살펴보자. 최저임금위원회는 모두 네 차례의 현장방문을 진행했다. 6월 1일에는 인천의 한 제조업체를, 6월 4일 오전에는 서울의 마트를, 같은 날 오후에는 인천의 장애인활동서비스업체를, 그리고 6월 9일에는 서울의 경비업체를 방문했다. 매번 2~3시간가량이 소요되었다. 보통 현장방문뿐 아니라 간담회나 토론회도 하지만 코로나로 간담회는 취소되었다.
참석자 명단을 살펴보았다. 2021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역시 네 차례 현장 방문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위원들이 적지 않았다.
공익위원 중에서는 박준식·권순원·전인 위원이 한 차례도 현장 방문에 참여하지 않았다. 박준식 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근로자위원의 경우에도 이동호·박희은·이영주·함미영 위원이 현장 방문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참석하지 못해 대리참석자를 보낸 경우도 있었다. 근로자위원인 민주노총 이정희 정책실장의 경우 현장방문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대신 세 번의 현장방문에 민주노총 정책국장이 대리로 참석했다. 사용자위원 중에서는 류기정 위원이 한 차례도 현장방문에 참여하지 않았다. 2017년과 비교해서 별달리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이다.
2021년에만 이랬을까?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의 현장방문 참여자 명단도 살펴보았다. 2018년에는 부산·인천·전북 익산에서 현장방문을 했는데 공익위원들만 참여했으며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전원 불참했다. 2019년은 서울·광주·대구에서 각각 공청회와 현장방문을 연계해서 했다. 역시 일부 공익위원을 제외하면 참석률이 저조했다.
2020년은 미리 2월부터 여러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를 상대로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공익위원들만 참여하여 공식적인 심의자료로 활용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화된 6월 말 부산에서 토론회를 하고 택시업체를 방문한 후 다음날 서울의 철도역사 청소용역업체를 방문했다. 1박 2일로 현장방문과 토론회를 한 '효율적인' 일정이었지만 역시 참여자는 27명의 위원 중 5~7명에 그쳤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의 현장방문 결과를 정리해보면, 4년간 모두 17개 사업장을 방문했다. 2017년에 익산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 등 광역시였다. 방문한 사업장의 업종 역시 다양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대표적인 최저임금 업종인 식당·카페·편의점은 물론이고 전체 사업체 중 62%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현장방문 자체도 많지 않았지만, 일부 공익위원을 제외하면 임기 중에 참석률이 절반을 넘어가는 위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부실 참여가 만성화 되어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현장방문이 적고, 위원들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을까? 위원 개개인의 바쁜 일정이나 의지의 부족도 이유가 되겠고, 근로자위원들의 경우 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보이콧'의 일환으로 현장방문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도 보인다.
하지만 애초에 현장방문이나 토론회, 간담회 등 최저임금 직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지난해 희망제작소에서 펴낸 최저임금에 관한 이슈 리포트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 당사자가 배제된 최저임금 협상 극복 방안>(링크)의 논의를 참고하여 살펴보자.
심의 없는 최저임금 심의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3월 말까지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 요청을 하도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심의 요청이 있은 후 90일 이내에 최저임금안을 심의하고, 액수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올해의 경우 3월 31일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심의 요청을 했기 때문에, 6월 29일까지 심의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기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최저임금 고시 일자인 8월 5일에 가까워져서야 심의가 마무리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최저임금 심의 기간은 4월에서 7월까지 넉 달 정도라 할 수 있다.
4월은 위원 위촉과 위원회 구성 등 '상견례'를 하다 보면 금방 지나간다. 6월 중순부터는 본격적인 심의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통상 5월부터 6월 초가 최저임금과 관련한 통계를 분석하고, 현장방문 조사를 하는 기간이 된다. 해당 기간 위원들은 위원회 산하의 전문위원회 논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전국을 다니면서 현장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국가통계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에는 기간이 부족하니, 매년 최저임금 심의는 근거와 논리보다는 각자의 주장을 반복해서 되풀이하는 자리가 된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팽팽하게 부딪히고, 공익위원들이 정부의 태도를 고려해 판단을 내리는 일이 반복된다. 굳이 '심의'라는 방식을 채택한 이유가 무색한 것이다.
업종별 차등 적용, 지역별 차등 적용 등 최저임금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을 곱게 들을 수 없는 것도 최저임금위원회의 이런 문제 때문이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먼저 업종별 임금 상황에 대한 조사와 의견 청취가 선행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지금까지 최저임금위원회의 현장방문은 형식적인 것에 그쳐왔다. 제대로 된 현장방문과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급격히 제도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말 아닐까?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결국 '힘 싸움'으로 끝나는 결과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위원회의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을 물가 인상률과 연동하자, 국회에서 결정하자, 위원회 위촉 방식을 바꾸자 등 최저임금위원회 구성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급격한 변화 이전에 적어도 최저임금위원회를 상설위원회로 운영하는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실상 교섭 기구에 가까운 기능을 하고 있지만, 본래 최저임금법에 따른 최저임금위원회의 기능은 심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 발전을 위한 연구와 건의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2분기'에만 일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아니라 1년 내내 최저임금에 대해 고민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상설위원회 구조가 되면 위원들이 최저임금 심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시간에 쫓겨 두세 개 사업장만 방문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출석하는 위원도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위원들부터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고, 공청회를 통해 이해관계자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야 '최저임금 당사자 없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싶다'시리즈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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