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성희롱 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 현황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LbYrIOPc6aSPrxXjeEbuxb3mcd4m4DKXv0w0CACUMio/edit?usp=sharing
올해 초 발표된 조사 결과에서 지자체 30대 여성 공무원 절반 가까이 '그렇다'라고 답한 질문이 있다. 최근 3년간 성희롱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조사는 지자체 공무원 664명(남성 290명, 여성 374명)이 참가한 설문 조사 결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2020년 성평등추진전략사업 :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성평등 의제 확산' 보고서를 통해 공개되었다. 공직 사회의 낮은 성인지 수준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를 보여주는 조사 결과는 성희롱을 경험·목격했어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했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68.8%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 있지만
일선 공공기관에는 조직 내부의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가 있다. 접수된 사건이 성희롱, 성폭력인지 그 여부를 결정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와 조직에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 대다수 지자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고충심의위원회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구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다. 피해자가 직장 안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가 고충심의위원회의 조치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이 지속되어 왔다. 지난해 발간되었던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회고록 <나는 김지은입니다>에서는 오히려 피해자를 질책하여 적극적인 신고와 증언을 가로막는 등 고충처리를 위한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당시 성희롱 사건에 대한 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참모 조직도 알고 있었다. 문제없다는 결정을 내린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의 구성은 비전문가인 내부인 위주였다. 심지어 한 심의위원은 심의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사안과 전혀 관련 없는 "어떻게 이 사건을 언론이 알게 되었느냐?"는 질책성 질문을 했다고 들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해준 셈이다.
- <나는 김지은입니다> 중 발췌
조직 내부에서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고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피해자는 직장을 그만둘 각오를 하고 고발이나 외부 공론화를 택할 수밖에 없는 가혹한 상황에 놓인다. 또 고발 등을 통한 공론화는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논의와 물음을 던지는 효과가 있지만, 한편으로 성폭력을 매우 '특별한 사건'으로 보이게 만들면서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위계적 조직 문화와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성찰에서는 멀어지게 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의 고충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일선 현장에서도, 문화 개선의 차원에서도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17개 광역지자체에 설치된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회 명단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어떤 사람들이 기관 내의 성폭력 문제를 책임지고 다루고 있는지 밝히는 것은 논의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위한 기본 사항이기 때문이다.
당연직 책임자 대부분 남성
2020년 7월 17개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고충심의회 명단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고충심의위원회를 비상설기구로 운영하는 경기도·전라북도·부산시를 제외한 14개 기관이 모두 심의회 구성원의 이름과 소속, 위촉 근거를 공개한 바 있다. 정보공개센터는 이를 토대로 심의회 구성의 당연직·전문가 비율과 성비 그리고 중대 사안이 있었던 지자체의 회의 기록을 분석해 시민들에게 공유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심의회 구성의 문제는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다. 당연직과 위촉직의 비율을 비교해봤을 때 노조 추천이나 외부 전문가로 위촉되는 위원이 절반 이하에 그치는 경우가 여전히 많았고, 기관 내에서 사안에 대한 해결을 책임지는 당연직의 성비가 남성에 치우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민간위원들이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거나 공무원 위원들의 입김 때문에 의견 개진 및 관철이 어려워질 수 있는 요소이기에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엔 공개, 올해는 비공개
그런데 작년과 비교해 주요하게 지적해야 할 문제가 오히려 하나 더 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 9월 모니터링을 위해 같은 내용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하자 부산과 서울, 전남에서 명단을 비공개하고 나섰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이름 이외에 위원들의 현직 및 소속 정보까지 식별 불가능하도록 비공개해 어떤 이력이나 전문성을 가지고 성폭력 사안을 다루고 있는지 전혀 파악이 불가능했다. 서울시의 내부 감사 조직인 옴부즈만 위원회에서도 '심의위원회 위원 명단 비공개 자체가 근거 규정이 없고, 이례적이며, 비공개할 특별한 사정이 없다'라고 밝히며 공개를 권고했지만 결국 서울시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정보공개건을 심의한 2021년 10월 서울시 제20차 정보공개심의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서울시 측은 고충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직접적인 징계 근거가 되기 때문에 권한이 크고,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중하여 '행위자'가 위원들에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접촉하려고 할 수 있으므로 명단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사건 판단을 하려면 명단이 알려져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인의 분야에서 직함을 내걸고 공적인 결정을 하는 위원회에 들어가서 조사를 진행하고 판단을 할 때 공적인 위치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게 되는 것은 공적으로 '나의 이름'과 역할이 공표될 때다. 그것을 숨기고 있을 때 더 공정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행위자가 접촉할 수 있으므로 '시민들'에게 명단을 비공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민들에게 공개가 되지 않더라도 기관의 내부자인 '행위자'는 명단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가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민감성을 민감한 사항을 다루는 사람들의 책임을 덜어주는 근거로 왜곡하여 사용할수록 직장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부담을 안고 외부 공론화와 법적 대응에만 기대게 될 것이다. 서울시가 고충심의위원회의 외부위원을 확대한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었는지 알 수 없다면 심의회의 신뢰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를 비롯해 갑작스레 명단을 비공개한 지자체들이 계속해서 성 비위 문제로 보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해당 지자체들은 조속히 심의회 구성에 대한 기본 정보들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고충심의위원회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싶다>시리즈 연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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