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제고사가 아닌 다른 교육을 선택한 교사 7명이 해임, 파면이라는 징계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많은(혹, 누군가 보기에는 일부가 될 수도 있겠죠.) 학부모들이, 학생들이, 시민들이 징계를 철회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아니,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네요. 10대 중반만 넘어도 입시경쟁에 돌입해야 하니 말입니다.
경쟁의 시대, 차별의 시대에 부디 어린이라는, 학생이라는 한 시절만큼은 1점에서 100점까지의 점수경쟁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그림: 12월 18일자 경향신문 만평>
보통 역사는 돌고 도는 거라고들 하지만 지금의 교육현실이 마치 20년 전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습니다.
1988년, 살인적인 입시지옥과 성적경쟁에 시달리다 못해 죽음에 치달았던 학생들을 보다못한 선생님들이 정부당국을 향해 우리 아이들을 살려달라며 보충 자율학습의 폐지를 촉구한 적이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이와 관련된 자료가 소장되어 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네요.
전문을 올립니다.
우리 아이들을 살리자 - 보충, 자율학습의 폐지를 거듭 촉구한다.
민족의 미래인 우리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다. 불과 한달 사이에 이 고장 화산중 이희숙양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무려 20여명의 학생들이 살인적인 입시경쟁, 성적경쟁의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으로 처절하게 항거하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더 죽어야 오늘의 교육현실은 바로잡아질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희생이 더 있어야만 미친 듯이 질주하는 성적경쟁, 입시경쟁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있단 것인가?
날로 신록의 푸르름이 더해가는 6월의 교정과 정든 친구를 뒤로하고 어두운 죽음의 길에 들어선 사랑하는 제자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 교사들은 가슴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몸을 떤다.
우리는 특히 이러한 사실이 보충, 자율학습이 전면적으로 확대실시되는 때와 시기를 같이하여 일어난 사실에 주목한다.
바야흐로 뜨겁게 불붙기 시작한 보충수업, 심야자율학습, 여기에 기름을 부은 각종 비교고사, 도학력평가가 학생들의 죽음을 가져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문교당국에 묻노니,
교사, 학생, 학부모와 전 매스컴의 폐지 주장에도 불구하고 굳이 강행하는 저의가 어디에 있는가?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대화를 통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파괴하여 수많은 비행청소년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온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려 하는가? 언제까지 교사들의 근무부담을 이렇게 가중시키고 올바르게 교육할 교사의 권리를 침해할 것인가?
문교당국에 엄중히 경고한다. 학생을 하루 12-15시간씩 학교에 가두어 둠으로써 학생의 대 사회적 관심과 요구를 봉쇄하여 창의력과 비판정신을 말살하고 학생을 단지 지배이데올로기 주입의 대상자로만 파악하는 정권안보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 이제 사랑하는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손을 털고 일어나야 할 때이다. 오늘의 참담한 교육풍토에 온몸으로 항거한 푸른 영혼들을 눈물로 쓰다듬고 참회와 사죄의 짚자리를 깔아야 할 때이다. 제자들의 절규가 우리들을 부르고 있다, 우리의 힘찬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한번 우리들의 주장을 확실히 밝힌다. 우리는 민주화의 성지 이곳 광주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학생들의 보충, 자율학습 폐지 운동에 진실로 경의를 표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아울러 학교당국의 현명한 대처와 용단으로 하루바삐 교육의 바른 길로 다시 돌아오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한편 이러한 학생들의 노력에 폭력과 비교육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탄압한 일부 학교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험중한 경고를 내린다.
결의사항
1. 본교당국은 보충수업, 심야자율학습을 즉각 폐지하라. 당국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이에 대처한다.
2. 교사들은 각 단위학교 현장에서 이의 폐지를 위해 동료교사와 강력히 연대한다.
3. 학부모들은 학교교육 정상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보충, 자율학습 폐지에 적극 참여한다.
4. 학생들은 보충, 자율학습 폐지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