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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이 겪은 학교 두발단속의 악몽

opengirok 2008. 12. 19. 10:25

몇일전 예일고등학교에서 두발단속하는 것 때문에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군요. 도대체 지금이 2000년대가 맞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80년대 제가 겪었던 악몽을 후배들이 그대로 겪고 있네요. 머리를 깍으면 공부가 잘되나요?  전 아무리 머리를 밀어도 공부가 잘되기는 커녕 감기만 걸리던데요.

이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고문에 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 언론사에 기고했던 저의 경험을 다시 올려봅니다.
언제쯤 학생들의 인권은 보장받을 수 있는건지 모르겠네요.


'잠 안 재우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사기관에서 철야조사는 관행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잠도 재우지 않은 채 철야조사를 하는 관행은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수사기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한 것 같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들의 등교시간은 오전 7시였습니다. 방송으로 하는 '0교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교시간은 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치는 오후 11시였습니다. 더군다나 상당수 학생들은 학원 한두 곳을 다니다 보니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새벽 1-2시가 되어야 가능했습니다.

다음날 학교를 다시 등교하기 위해서는 오전 6시에 기상해야 하니 많이 잔다고 해도 4~5시간입니다.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도시락 2~3개를 챙기며 학교로 헐레벌떡 뛰어가던 생각이 새롭습니다.

더군다나 1분이라도 늦게 등교하면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엎드려 뻗쳐 자세로 1시간은 견뎌야 합니다. 가끔은 너무 잠이 와 그 자세로 몇 번 잔 적도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수면권을 제약 당하는 곳이 어디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유독 고등학교 3학년만 되면 수면권을 제약 당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더욱 슬픈 것은 이런 현실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가위질 당하기'
ⓒ 정광숙

ⓒ 정광숙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두발 자율화'였습니다. 학급회의만 열리면 두발 자유화를 요구했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강조하며 머리를 짧게 자르길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머리를 마음껏 기르고 멋 내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과 같은 욕망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 학교 규정인 3cm를 넘기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공포의 두발검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바리캉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습니다.

"자… 모두 눈감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부터 두발검사를 실시하도록 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머리가 다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지나갈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이놈들 머리가 길구나. 내가 단정하게 깎아 주마."(쓱싹 쓱싹)

눈을 떠보면 저를 포함해 학생들의 머리는 쥐가 먹은 듯 움푹 패여 있습니다. 교실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떨어진 채 말입니다.

그때의 공포스런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머리가 긴 것과 공부하는 것이 무슨 관련성이 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매 견디기'

학창 시절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랑의 매'입니다. 반에서 하위권을 늘 유지했던 저에게 매를 맞지 않는 날은 너무나 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두 대 맞는 것은 그냥 웃으면서 맞을 수 있을 만큼 훈련이 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가끔 재수 없는 날은 과목 선생님들마다 돌아가며 때리기도 했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교는 하루종일 맞는 소리가 멈추질 않습니다.

떨어진 점수 숫자만큼 맞거나 반 평균에서 밑도는 수치만큼 사랑의 매를 대는 것은 전통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중간고사를 마치고 점수를 매겨 보니 모든 과목에서 점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취향에 맞는 막대기를 들고 들어와 신체 각 부위를 골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수학, 국어, 역사 등 과목 수업이 진행될 때마다 한번은 종아리, 한번은 손바닥, 엉덩이에다 심지어 뺨까지 선생님의 취향에 따라 다 맞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10년 훌쩍 지나고 있지만 그 날의 설움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온몸이 퉁퉁 부은 채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자다 너무 아파 잠을 깨 보면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눈으로 다리에 약을 발라주곤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이루어지는 부모님 재산 조사,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체력훈련(기합),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지품 검사 등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 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그때 그 시절'로 치부하며 웃으며 얘기하기에는 지금의 학생 인권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학교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학생들을 단순히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주체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