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작은도서관의 함정

opengirok 2013. 6. 4. 10:56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신동호 이사(경향신문 논설위원)


4년 전 '지구를 팔팔하게 살리는 88가지 상품' 선정에 관계한 적이 있다. 물론 상품만이 아니라 시설·서비스·행동·문화 등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모든 유·무형의 실체나 개념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내 의견이 반영돼 선정된 것 가운데 하나가 작은도서관이었다. 당시 작업 디렉토리를 찾아 파일을 열어보니 그 취지가 이렇게 적혀 있다.


"'작은도서관'은 가까운 친구 집에 놀러가듯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집 근처의 소규모 도서관을 말한다. 대안적 도서관 운동으로 시작된 것을 2006년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도서관은 숲과 강을 지키는 곳이기도 하다. 책과 잡지 및 다양한 자료를 수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이용하기 때문에 종이의 수요를 크게 줄여준다. 또 펄프 및 제지 공장에서 배출하는 유독한 폐수로 강물이 오염되는 요인을 덜어준다."

지금 다시 이 일을 하라고 하면 적잖은 고민을 할 것 같다. 작은도서관에 대한 곱잖은 얘기가 자꾸 들리기 때문이다. 문헌정보학자, 도서관 운영자, 사서, 서점주, 도서관 운동가, 출판업 종사자 등으로 구성된 어느 모임에서였다. 도서관과 관련한 여러 문제점이 나오는 건 당연했지만 작은도서관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은 뜻밖이었다. "작은도서관이 도서관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처음에는 작은도서관에 대한 기존의 믿음에 큰 혼란을 겪었고, 말귀를 알아들은 뒤에는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도서관은 그 말 자체가 절대적인 선의와 매력을 갖고 있다. 도서관만큼 대중에게 친근한 단어를 찾기 어려운 것은 미국의 대통령 기록물 보존·관리 시설의 작명에서도 알 수 있다. 국립기록청(NARA)이 대통령기록관(Presidential Archives)이라고 해야 마땅한 전직 대통령 기록시설을 대통령도서관(Presidential Library)이라고 한 것은 도서관이라는 말이 가진 긍정적·대중적 이미지가 그만큼 강력하고 확고하다는 뜻일 게다. 작은도서관은 거기에 '작은'이라는, 더욱 환경 친화적이고 지역 밀착형 이미지까지 더해진 이름이다.


작은도서관이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동안 작은도서관 운동과 진흥 정책이 도서관 발전과 독서문화 향상에 놀라운 기여를 해온 점을 깎아내릴 이유도 없다. 다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작은도서관 중심으로 도서관 정책을 펴면서 상대적으로 공공도서관 전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소홀해지는 점을 도서관계 일각에서 매우 염려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 요소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전국에 작은도서관이 얼마나 되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구조가 첫 번째다. 작은도서관 숫자는 2010년 12월 기준 3349개관이라는 게 정부의 최신 집계다. 지난해 '작은도서관 진흥법'이 시행되고 작은도서관 설립 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그 숫자가 훨씬 늘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숫자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아는 데가 없다. 한 도서관계 인사는 "문패를 달고 남아 있는 숫자가 700여개로 추산되고, 내실있게 운영되는 되는 곳은 그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은도서관은 33㎡(10평) 공간에 책 1000권, 의자(열람석) 6개를 놓으면 요건이 충족된다. 물론 사서가 없어도 된다. 정부의 실적 부풀리기나 지자체의 생색내기에 안성맞춤이고, 정부·지자체의 지원금을 노리는 이른바 '작은도서관 사냥꾼'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작은도서관은 법적으로 공공도서관의 지위를 갖고 있다. 도서관법에는 작은도서관을 '공중의 생활권역에서 지식정보 및 독서문화 서비스의 제공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도서관으로서 제5조의 규정에 따른 도서관의 시설 및 도서관자료기준에 미달하는 작은도서관'(제2조 4호 가목)이라고 정의하고 공공도서관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도서관의 법적 기준에 미달하는 것을 법적으로 도서관이라고 하고, 그것도 공공도서관이라고 하는 희한한 규정이다.


도서관은 작은도서관으로 인해 정책적·사회적 조명을 폭발적으로 받고 있지만 거꾸로 그 때문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도서관은 주민의 독서실과 문화센터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공중의 정보이용·조사·연구·학습·교양·평생교육 등에 이바지하는 시설'이 되기 위해서는 중·대규모 공공도서관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작은도서관과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크고 작은 나무와 풀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숲처럼 도서관 역시 그래야만 독서 생태계가 건강하고 풍성해질 것이며, 지속가능할 것이다. 작은도서관 진흥책이 독서 생태계를 교란하고 도서관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짓기도 쉽지 않지만 운영하기는 그보다 훨씬 비용과 노력이 더 필요한 게 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이 1960년대 새마을문고의 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서관 정책을 큰 틀에서 재점검하는 쪽으로 도서관계자와 정책 당국이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정보공개센터 이사이신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께서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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