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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 약속 어디로 갔나

opengirok 2012. 7. 17. 11:28


정진임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간사

 

 

 

 우리나라 주요정책을 심의하는 정부 최고의 정책 심의기관인 국무회의 회의록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 각부 장관들이 모두 모여 외교, 국방, 민생 등 그 내용과 영향의 중요도가 결코 가볍지 않은 갖가지 현안을 다루면서 토의 내용에는 고작 '이견 없음' 단 네 글자뿐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무회의가 속기록 작성 대상 회의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공공기록의 관리를 주관하는 국가기록원에서 속기록 작성 회의를 지정하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소위 권력기관들에서 주관하는 회의들은 대부분 여기에서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의 요약본으로 남기는 회의록과는 달리 속기록은 당시의 상황을 모두 기록해 의사결정과정과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해서라도 국무회의와 같은 중요 회의는 속기록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수차례 국무회의 속기록 지정을 수차례 주장해 왔다.

 

 

그리고 2009년 8월 이명박 정부는 국무회의를 속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발표했다. 발언내용 전부를 기록해 속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수를 쳤다. 칭찬도 했다. 이전 정권에서 자체적으로 대통령주재 국무회의를 속기록으로 남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공식화 시킨 것은 MB정부의 말마따나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국무회의 회의록 작성 현황을 보면 황당할 뿐이다. 과하게 표현하면 청와대에 속은 기분도 든다. 속기록으로 작성한다던 국무회의는 여전히 속기록 작성 0건이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2010년 회의록 작성현황을 보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인 국무회의의 속기록 작성 횟수는 0건이다. 행안부가 공개한 2010~2011년 111회의 국무회의록에서도 속기록 작성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행안부에 물으니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는 청와대가 따로 속기록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자기네 소관이 아니고, 총리 주재 국무회의는 여전히 회의록으로만 작성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속기록은 이전 정부에서도 청와대에서 자체적으로 속기록으로 남기고 있던 사안이다. 이를 마치 자기 대에 들어 처음 하는 양 떠드는 것은 투명한 정부, 책임 있는 정부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청와대의 답변을 듣기 위해 대통령실에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현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해봤다, 그런데 청와대 하는 모양이 가관이다. 속기록 작성현황에 대해 공개하라고 분명히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행안부로 넘겨버렸다. 답변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부수립 이후 최초라며 투명성과 역사의식이 높음을 자랑하던 현 정부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이후 수차례 연락을 시도한 끝에야 결국 청와대로부터 대통령주재국무회의에 대해서는 속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현 정부는 정치, 경제, 외교 전반에서 심지어는 퇴임 이후 살 내곡동 사저를 마련하는 데까지도 수많은 꼼수를 부려왔다. 오죽하면 현 정권 헌정방송이라는 '나는 꼼수다'까지 등장했을까. 그런데 대통령의 꼼꼼함이 여기에까지 미칠 줄 몰랐다. 원래 하던 대통령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을 가지고 역사의식 높은 대통령 행세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역사의식 있는 대통령, 투명한 정부, 책임있는 정부가 쇼나 코스프레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는 아직 충분히 남았다. 대통령 임기도 수개월이나 남지 않았는가. 이제라도 모든 국무회의를 속기록으로 작성하도록 해라. 총리 주재회의는 제외한다는 어줍잖은 꼼수는 부리지 마라. 현 정부의 역사성, 투명성, 책임성은 지금 정부가 남긴 기록을 보고 후대가 평가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