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를 표방했을 때에, 공무원들이 시민단체에 찾아와서 ‘참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해 준 말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시민들에게 권한과 역할을 주면, 참여는 저절로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5년 동안 내가 말했던 기본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의지와 말은 관료조직을 통해 실행되어야 했지만, 모든 것은 관료조직을 거치면서 왜곡되었다.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려고 했지만, 정작 나온 결과물은 주민들이 참여하기 힘들게 만든 법안이었다.
따지기도 해 봤지만, 두터운 관료조직의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참여정부’는 저물어 갔고, 정권이 바뀌면서 참여라는 단어는 설 자리를 잃었다. 정부는 귀를 닫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을 거부했다.
6.2 지방선거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많은 야당 당선자들은 주민참여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상당수는 ‘가짜 참여’로 전락할 가능성도 많다. 관료조직에 둘러싸여 침몰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을 염려도 있다.
우선 참여를 말하면서도 참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경우가 보인다. 경기도 김포시의 경우에는 시민들의 의견수렴을 위한 ‘시민패널’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그 중 50%는 읍ㆍ면ㆍ동장이 추천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읍ㆍ면ㆍ동장이 찍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시민참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낸 의견이 전체 김포시민을 대표하는 의견이 될 수도 없다.
한 가지 예를 든 것이지만, 야당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선된 지역 곳곳에서 이런 식의 ‘가짜 참여’가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가 부족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료조직의 암묵적인 저항에 부딪힌 때문이기도 하다. 참여에 대한 경험도 없고 참여에 대해 비우호적인 공무원들에게 맡겨 놓아서는 참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또한 ‘참여정부’를 거쳤지만, 여전히 야당 정치인들조차 참여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다. 참여는 아무렇게나 사람들 모아서 위원회만들고 여론조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진짜 참여’가 되려면 참여하는 주민들을 대표성있게 선정해야 한다. 배심원을 뽑듯이 무작위 추출을 하되, 연령별/성별 안배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게 어려우면 공개모집을 해서 추첨을 하는 방식을 택해서라도 자의적인 선정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주민ㆍ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참여를 요식행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권한과 역할을 줘야 한다. 그것은 기존에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이 행사하던 권력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일 충남 부여에서는 ‘제1차 충남도민 정상회의’가 열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주민참여의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에서 외국의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 방식을 참고하여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의견들을 참고하여 충남도정의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안희정 지사의 의지였다.
그러나 문제도 많았다. 여성들과 20대의 참여가 저조했고, 참여자들에게 충분한 토론의 시간이 보장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가능성은 보였다. 참여자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안희정 지사는 ‘이제 소수의 권력자들이 고독에 찬 결단을 내리던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해 자신의 권력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앞으로 충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주민참여의 시도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는 ‘가짜 참여’ 시늉은 그만 하고, ‘진짜 참여’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 이 글은 위클리경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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