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기록을 손쉽게 폐기 하려는 이명박 정부

opengirok 2010. 7. 19. 12:02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평범한 시민인 김종익씨를 사찰했다는 것이 폭로되면서 온나라가 소란스럽다. 말 그대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들의 비위 사실을 감찰해야 하는 곳임에도 직무 범위를 넘어 일반시민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찰했다는 것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한 것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전혀 다른 측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경찰서에 김종익씨에 대한 수사 의뢰를 공문(기록)을 발송해 정식으로 요구했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웠다. 그동안 불법 행위를 의도적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간 큰 공무원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경찰서에 공문을 발송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불법행위도 인지 하지 못할 정도로 윤리의식이 떨어져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만약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은 윤리 의식이라도 남아 있어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증거를 남기지 않고 사찰했다면 김종익씨는 그 억울함을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이 그냥 유아무야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공무원들이 직무를 행한 결과를 남기는 기록들은 매우 중요하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후에도 그 정권을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자 유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매우 충격적인 시행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기록물관리법)을 개정해 '보존기간 1년에서 3년 이하 기록물 평가 및 폐기시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생략 가능' 하도록 하고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은 보존연도 1년에서 3년 이하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행 법안에서는 모든 기록을 생산하여 폐기할 때에는 보존연도 1년부터 30년까지 해당하는 모든 기록에 대해서 외부 심사관이 참가하는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개최하여 평가받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존연도 3년짜리 기록을 3년이 지났다고 해서 무조건 폐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거쳐서 다시 한번 검토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제도를 둔 이유는 기록물 보존기간은 생산할 때 기준이지 폐기시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산할 때는 중요 기록이 아니지만 여러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 폐기시에 매우 중요한 기록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아무 생각없이 경찰서로 보낸 공문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기록물평가심의회에서는 보통 폐기대상 기록 중 10% 정도의 기록에 대해 보존기간을 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위와 같은 법이 통과되면 어떤 일이 벌어 질까? 지금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가면 지방자치단체 사무감사결과를 공개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록관리분야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것은 "기록물 보존기간 미설정", "기록물 보존기간 하향 설정" 이라고 지적하고 시정이 요구된다는 감사결과를 내놓고 있다.
 
 기록을 오래 남기면 귀찮은 일만 발생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공공기관에서는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존기간을 5년이상 보존해야 하는 기록을 1-3년으로 하향 조정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실에서 법안 개정을 한다면 보존기간을 하향 조정하는 일은 향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며, 그 기록들은 어떤 평가도 없이 폐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결과 향후 중요한 문제가 터질 때 기록에 의한 사무감사 및 검찰 수사도 불가능 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도대체 이 정부는 무엇이 두려워서 기록을 이렇게 쉽게 폐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개정법안 에서는 '학력제한 철폐' 라는 미명하에 기록관리전문요원의 자격을 완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에서 사관 역할을 하고 있는 기록관리전문요원들은 '기록관리학을 전공한 석사 학위 이상을 받은 자'에서 '기록관리학, 역사학, 문헌정보학, 보존과학을 전공한 학사 학위 이상을 받은 자 중에서 1년이상 기록관리 경력이 있고, 1년이상 교육을 받은 자'이상이면 기록전문요원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저 조항을 잘 보면 학력제한 철폐가 아니라 현직 공무원들의 자리를 넓히는 의도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불과 5년전만 하더라도 공공기관에서는 기록관리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면 기록이 없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고, 심지어 기록을 잊어버리거나 의도적으로 없애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지면서 기록전문요원제도를 집중적으로 양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법안 개정은 기록전문요원들의 전문성을 무시한채 그저 다루기 쉬운 공무원들을 기록전문요원으로 채용하려고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또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어렵게 지난 10년간 발전시켜왔던 기록관리학 학문은 무너질 것이며 대부분의 기록관리대학원은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는 것과 공무원출신 기록전문요원을 채용하겠다는 법안 개정안이 이번 정부의 의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번 시행령개정안은 정부기관 의견조회에서 60여개 기관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시행령개정안에 이렇게 많은 반대의견을 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기록관리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기록관리위원회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 지난 3월에 앞도적인 표차이로 부결시켰음에도 심의 및 의결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는 전혀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말그대로 자리만 존재하는 허깨비 위원회 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한 기록전문요원은 "기록관리정책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는 기록관리체계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일을 하고 있고 오히려 각급기관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록관리현실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매우 참담하고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2010년 7월 현재 이명박 정부는 온갖 문제가 터지고 있다. 정권의 가장 기본인 기록관리 정책을 보면 이런 결과는 당연해 보인다. 기록관리정책은 민주주의 기본 중에 기본이자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주축돌이다. 만약 정부가 이번 시행령을 밀어붙인다면 민심은 더욱 요동 칠 것이며 이 정권은 점점 더 수렁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 이 글은 <위클리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