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투표하지 않는 당신, 무관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

opengirok 2010. 5. 31. 13:22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우리나라의 제1당 당원이신 당신께 두서없는 편지를 씁니다.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으시다고요.

아닙니다.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무관심당’에 가입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정당이지요.

어처구니없다고요? 그렇겠지만 짧은 제 얘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저도 무관심당의 경계에서 왔다갔다하는 무당파 유권자니까요.



당신은 ‘무관심당’ 당원입니다

먼저 사는 얘기부터 해보지요. 당신의 삶은 어떠세요? 행복하신가요? 아니라고요? 혹 취업 때문에 다른 일은 돌아볼 여유도 없는 20대이신가요? 아이 키우면서 스트레스 받는 부모이신가요? 먹고 살기 힘들어 피곤에 절어 있는 40~50대이신가요? 요즘 불안하신가요? 그렇다고요? 뉴스만 보면 나오는 전쟁 얘기에 불안하신가요? 아니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불안하신가요? 이런 상황에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내보내는 투표 광고를 보면 마음이 움직이시나요? 아니면 채널을 돌려버리고 싶으신가요?

지금 제가 한 얘기들은 사실 제 마음 속에 있는 얘기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는 그대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저는 이번 지방선거 때 당신이 투표한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당장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당신께 투표는 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최소한의 이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투표는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은 투표하지 않는 당신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투표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정치인들입니다. 왜 동네마다 경로당은 있는데 청년들을 위한 공간은 없을까요? 저는 청년들이 투표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들은 얘기 하나만 소개하지요. 미국의 대학생들이 따질 것이 있어서 국회의원을 찾아갔는데, 그 의원이 ‘투표도 하지 않는 당신들의 얘기를 내가 들어야 할 이유가 뭐냐’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미국 의원이 솔직하게 얘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무시당하지 않고, 내 욕구와 내 목소리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투표를 해야 합니다.


둘째,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인이라면 고개 돌리고 싶은 당신이라면, 잘 들어주세요. 당신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정치인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은 당신이 투표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이 투표를 하면 선거에 변수가 생기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이 투표를 해서 그토록 혐오스러운 정치인의 뒤통수를 쳐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모르게 썩고 무능한 정치인을 도와주는 셈이 됩니다.

 

셋째, 투표를 하면 당신의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낸 홍보물을 보면, 그래도 당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하는 후보자가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사람이 당선되면 e메일이라도 보내서 ‘약속 안 지키면 다음 선거 때 재미없다’고 하세요. 그러면 아마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공약이라도 지킬 겁니다.

그런데 홍보물을 봐도 찍어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요? 그래도 투표장에는 가세요. 가서 백지라도 투표함에 넣으세요. 그래야만 ‘찍어주려고 해도 찍을 놈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정치인들이 긴장을 할 겁니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네요. 혹 이번 선거로 정치가 확 바뀔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당신이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정치는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투표하러 가는 것이 큰 변화를 위한 작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어차피 정치는 한 번에 바뀌지 않고, 당신의 무관심도 한꺼번에 깨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사진출처 : 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