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제3자가 비공개 원해서 정보 비공개?...따져봐야!

opengirok 2021. 11. 2. 10:51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은평시민신문에 연재 중인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정보공개제도의 이상적 선순환

 

정보공개 청구는 기본적으로는 청구인과 청구 대상인 공공기관 간의 절차입니다. 청구인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공공기관은 정보공개 여부를 청구인에게 통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공공기관에 나와 관련한 정보를 청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와 관련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내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공개 통지를 한다면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정보공개법에는 만약 공개 청구된 정부의 전부, 또는 일부가 청구인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제3자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청구 사실을 제3자에게 지체 없이 통지해야 한다는 조문이 있습니다. 만약 공공기관에서 당신과 관련해서 이런 내용의 정보공개 청구가 있다고 알려온다면, 연락을 받은 당사자는 사흘 내로 정보 비공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3자가 비공개를 요청한다고 해서 그 것이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3자의 비공개 요청은 공공기관이 참고해야 할 사항일 뿐, 결과적으로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공공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제3자 비공개 요청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가 제3자와 관련이 있는 경우, 정보공개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공공기관이 제3자와의 관계에서 거쳐야 할 절차를 규정한 것에 불과할 뿐, 제3자의 비공개 요청이 있다는 사유만으로 정보공개법 상 정보 비공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2008두8680)면서 비공개를 한다면 어디까지나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각 호에 따르는 비공개 사유에 근거해야 함을 분명히 하기도 했습니다.

 

정보공개 과정 중 정보가 제3자와 연관있는 자료일 경우 의견청취를 실시 한 후 공개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분명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비공개 요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비공개 통지를 하는 공공기관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에서 설치한 위원회의 위원 명단을 정보공개 청구할 때, 위원들이 공개를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비공개를 통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분명히 정보공개법을 잘못 적용한 것이죠.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처리대장을 살펴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해서, 도대체 기본적인 원칙을 숙지하고 업무를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을 느끼게 될 때도 있습니다. 

 

 


최근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업병 피해 가족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산재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제출 받은 확인서를 공개해달라고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니, ‘사업주의 비공개 요청에 따라 비공개’한다는 내용으로 통지를 했다고 합니다.

산업재해를 승인 받기 위해서는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불공정한 구조에서, 그렇다면 입증 자료를 달라고 하니 정보공개법 상의 근거도 없이 그냥 비공개를 한 것입니다.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법을 어기면서까지 노골적으로 ‘제3자’인 사업주의 편에 선 셈입니다.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에 관한 공공기관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은 자신이 보유ㆍ관리하는 정보를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또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담당자는 ‘공개 여부의 자의적 결정’이나 ‘위법한 공개거부’ 등 부당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공개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역시 공공기관이 당연히 이행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제3자 요청만을 근거로 비공개하는 것은 분명히 ‘위법한 공개거부’이고 제3자를 핑계로 공개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법한 비공개 통지를 했다는 이유로 담당 공무원이 징계를 받았다거나 해당 기관이 제대로 페널티를 받았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별다른 처벌이나 징계가 없으니 위법한 비공개를 관행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어떤 정보의 공개 여부는 알 권리의 문제 일 뿐 아니라 산업재해가 인정되느냐 마느냐를 결정 짓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공공기관 때문에, 누군가의 삶이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는 것이죠. 위법한 비공개를 더 이상 관행이라는 말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