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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왕의 옆에서 무엇인가 계속 적어대는 보조출연자를 발견하기 쉬울 것이다. 팔과 어깨가 무척이나 아플 것 같은 그들의 임무와 관직을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들은 바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의 사초(史草)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이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 잘 반영되어 남겨지도록 하기 위해 국왕이 사초를 절대로 열람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것은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알만한 사실이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기록문화의 전통은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이하, 대통령기록관리법)」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퇴임 전에 법령에 따른 비밀기록물, 인사와 관련된 기록물,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록물을 '지정기록물'로 지정하여 15년 동안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기록관장의 임기를 5년 동안 보장함으로써 후임 대통령의 정치적 악용을 방지하려는 것이 대통령기록관리법의 핵심골자이다. 이 법령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대통령의 중요기록물에 각종 보호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대통령이 퇴임 시에 중요한 기록물을 잘 생산하고 폐기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이 사안이 얼마나 심각하였으면 학술연구에 매진해야 할 학술단체들마저 신임 대통령기록관장의 임명을 제고하라는 성명서를 냈을까? 지난 3월 22일 한국기록관리학회(회장 경북대학교 남권희 교수)와 한국기록학회(회장 안병우 교수)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임명은 대통령 기록이 제대로 생산, 관리되어 국가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파괴하는 조치라고 판단'하고 '전임 대통령의 기록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느 정부가 대통령 기록을 제대로 남기려 하겠는가?'라고 우려하였다. 더불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퇴행적 행태이며,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대통령기록관장 인사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기록관리에 대한 홀대와 무관심은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2010년이 되면서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는 '행정편의를 위한 규제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의 일부 시행령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보존연한 1년, 3년 이하의 기록물을 외부 전문가의 심의 없이 폐기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비공개 기록들의 공개여부를 5년마다 검토하는 절차를 삭제하려는 것이다.
기록물 폐기를 외부 전문가들이 심의함으로써 중요기록물이 잘못 책정된 보존연한에 의해 폐기되는 것을 방지하고 공개여부를 5년마다 검토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것이 현재 법률의 목적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삭제하려는 것은 기록을 마음대로 폐기하고 국민들에게 최대한 오랫동안 숨기겠다는 의도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1498년(연산군 4년) 「성종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실록청당상관으로 있던 이극돈(李克墩)은 사초를 정리하다가 김종직의 〈조의제문 弔義帝文〉과 훈구파의 비위사실과 이 기록된 것을 발견하고서 <조의제문>이 세조의 찬탈을 비난한 것이라고 연산군을 충동해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빌미가 되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가 21세기 되풀이 되지 않길 바라며 이명박 정부는 친MB인사의 신임 대통령기록관장의 임명을 철회하고 학계의 의견을 귀담아주길 바란다.
전국기록관리전공 학생연합 대표 문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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