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은평시민신문에 연재하는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정보공개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보면 '알권리'가 적용되는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고민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대중의 알권리'라는 핑계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경찰이 아직 공개 하지도 않은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보도하는 뉴스, 유족들의 동의도 없이 사고 피해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인터넷 언론 등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아무리 공익적인 목적을 주장하더라도, 본질은 언론사의 이익을 위한 속보 경쟁에 있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알권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미디어 윤리의 문제가 됩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은 시민들의 범죄자 신상공개에 대한 요구가 기존의 선을 넘어서는 것을 정당화 할 때입니다. 최근 흉기 난동, 마약 범죄 등 강력범죄로 인한 사회 불안이 커지면서, 정부가 강력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를 확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지난 6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 대상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 확대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법무부 역시 이를 받아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 대한 신상공개 규정을 만들겠다고 나섰고요.
하지만 강력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다고 해서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입니다. 전문가들 역시 신상공개 제도가 가지는 범죄 예방이나 재발 방지 효과가 크지 않지만, 오히려 시민의 법감정을 고려하고,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시민의 알권리’가 피의자 신상공개의 주된 이유인 셈이죠.
문제는 이 '알권리’가 모든 범죄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 보건 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들은 재판이 끝나고,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그 사실이 공식적으로 공표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문제가 일어나거나, 부당해고 등의 노동 탄압으로 문제가 된 기업들의 이름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구직자들은 이 기업이 얼마나 위험한 일자리인지, '블랙 기업'인지 알지 못한 채 취업을 하게 됩니다. 이 정보가 필요한 구직자들은 정작 알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살인 사건, 마약 사건 등의 특정한 강력범죄에서는 '알권리'를 내세워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여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정보공개가 필요하고 효과적인 영역에서는 이를 기피하는 상황. 알권리가 과연 어디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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