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제 아무리 제약사의 CEO라도 코로나 종식을 위해서는 백신 생산량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백신 생산이 지연되고 유의미하게 증대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다. 여기에는 국제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IP제도와, 미국의 전시물자법이나 인도의 수출통제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자국 우선의 분배를 위한 국민국가의 기획이 함께 개입한다.
2020년 12월 코로나 백신이 상용화된지 8개월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서 45억회분의 백신이 접종되었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100명당 104회분의 백신이 접종된 반면 29개 최저소득 국가에서는 100명당 2회분의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코로나 종식을 위해 협력하겠다던 말과는 달리 한국을 포함한 고소득 국가가 이 와중에도 부스터 샷을 계획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코로나를 장기화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위기 상황에서 저소득 국가가 백신 생산 국가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WHO는 'mRNA 백신 기술 이전 허브'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같은 시도들은 생산시설 불균형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반 상황들을 살펴볼 때, 전 세계의 생산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게 만드는 의약품 생산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인류의 전망은 어둡다. 세계의 생산시설을 동원해 백신 생산량을 최대한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각 시설에서 백신 기술을 재현해 약품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약사들은 생산량을 늘리는 것 보다는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작년부터 백신으로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더니, 지난 달 백신의 가격을 올렸고, 바이든 행정부가 백신 관련 특허 면제 지지를 표하자 "러시아와 중국에게 mRNA 플랫폼 기술이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며 특허면제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특허 면제는 고사하고 자신들의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일부 제약사들은 위탁생산계약조차 맺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모더나의 경우, 오로지 론자사만을 위탁생산 파트너로 고집하고 있으며, '신약 개발 조직이 있는 CMO에는 주문을 맡기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중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특허와 노하우가 섞여있는 형태로 기술 독점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생산시설들이 기술을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려면 특허 공개와 더불어 적극적인 기술이전, 혹은 특허의 내용으로 기술을 재현할 수 있도록 기술 내용이 제대로 공개 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특허' 제도는 "공개의 대가로 특허를 부여하게 되므로, 일반인이 쉽게 실시할 수 있도록 기재하고 있는가를 심사"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제약사들은 "특허출원을 하더라도 노하우는 최대한 숨기면서 특허등록에 필요한 명세서 기재요건만 맞추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특허출원전략으로 삼으면서, 특허 등록을 위해 필수적인 기술 공개를 교묘하게 피하려고 시도한다.
특허를 통해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것에 많은 현실적인 장벽이 존재하고, 원자재 수급 등의 문제로 획기적인 증대가 실제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특허 면제는 충분히 시급하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연구개발이 지금도, 앞으로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큐어백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코로나 백신에 포함된 면역반응 관련 기술, 전달체 관련 기술(LNP)등 다양한 원천기술의 특허 장벽은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백신을 만들기 어렵게 한다. 사실 우리는 특허가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해하고 있는 현실을 코로나 백신 개발 과정에서 충분히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변이 바이러스로 코로나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차세대 백신이나 '범 코로나(pan-coronavirus)' 백신 개발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기존 백신의 공급량을 확대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의 진화보다 빨리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 특허면제는 필수적이다.
금융세계화 시대 제약자본의 전략과 의약품 접근권을 위한 투쟁
신자유주의 금융화 속에서 제약회사들의 수익 창출 전략을 요약해보면, 1) 연구개발의 리스크를 대학 등 공공에 전가 하고 2) 인수합병 통해 몸집을 키우고, 독점을 이용해 약값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수익을 극대화 하며, 3) 주식시장에서의 주가 상승으로 금융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생산 없는 이윤' 취득을 핵심으로 하는 금융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이 비용절감과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영업 전략을 세우는 것이나, 이윤을 장기적인 생산을 위한 기업활동에 재투자 하기 보다는 경영진을 포함한 투자자들의 배당금 지급에 쓰는 것,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은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오, 제약산업이 유독 주식시장에서 투자 광풍을 일으키며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종목으로 인식되는 것은, '지식재산권' 제도를 통해 20년 이상 (바이오 의약품의 경우 12년) 독점을 보장받을 수 있고, 이 독점적 지위를 통해 판매 조건에 있어 막강한 협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특허 면제안 지지를 선언한 다음날 화이자, 모더나, 노바백스 등 백신 생산 제약사의 주식이 일제히 하락했고, 모더나는 6.2%나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수합병을 통한 '빅 파마' 전략도 지재권을 통해 충분히 '시너지'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각국 정부가 공중보건을 위해 신약을 꼭 구매해야 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공공의 부담과 협상력의 차이가 오히려 더 현저해진다. 게다가 연구개발비의 상세 내역도, 구매계약의 실질적인 내용도 비밀에 부치는 투명성의 결여는 의약품 생산 구조, 생산비에 대한 대중 및 사회운동 진영의 비판과 개입을 차단하고, 여론의 관심을 국가별 대응에만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현재의 지식재산권 제도에 균열을 내지 않고서는 의약품 접근권과 보건적 필요를 중심으로 의약품 생산체계를 재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앞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싸움과 주장이 필요할까. 5회차에 걸쳐 의약품 접근권 이슈들을 살펴보면서 떠오르는 부분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해보면 크게 세 가지다.
(1) 투명성에 대한 요구
백신을 포함해 모든 신약의 구매 과정, 가격, 계약조건은 비밀리에 이뤄진다. WHO에서는 2019년 5월 72차 총회에서 '의약품과 백신 및 기타 건강관련 제품 시장의 투명성 향상'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해 실제 거래 금액에 대한 정보 공유를 회원국들간 강화하고, 연구개발부터 가치사슬에 따른 제약 특허와 임상시험 결과, 그리고 제약회사의 마케팅 비용 등 기타 가격결정요인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토록 해야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의약품 유통은 공공조달에 해당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공조달 계약에 대한 투명성은 필수적으로 요구됨에도 유독 의약품 계약은, 무기계약과 같은 수준의 비밀주의가 허용되어왔다. 제약자본의 생산구조를 정확하게 알고 제약자본에 대한 규제 논의를 활성화 하기위해서는 결의안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각국에서 입법 등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 연구개발 및 생산에서 공공의 역할과 공적통제 강화
발제내용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현재 과학기술분야의 기초연구들은 주로 대학이나 공적 연구기관들에 의해 수행된다. 의약품 개발의 토대가 되는 기초연구를 포함하여, 공공의 지원을 받은 연구개발이나 임상시험 등에 대해 그 성과물들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유화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대응하는 것은 지식 독점을 완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공적자금'의 개념을 특정 프로그램을 통한 명시적인 지원금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약품의 연구개발, 임상시험, 생산, 조달, 세금 등 전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어떻게 공공의 재원이나 기여가 들어가게 되는지 면밀히 분석되어야 한다. 더불어 공공에서 직접적으로 연구개발을 지원 할 때에는 그 조건으로 R&D 결과물에 대한 특허 제한 및 접근권 보장을 포함해야 하며, 해당 기술을 이전받는 기업들에게도 이러한 조건을 포함하도록 해야한다. 특히 공중보건 등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공공 생산시설 등에 기술이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3) TRIPS 유연성 조항 실질화
지난 6월 G7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2001년 도하선언에 따라서 자발적 사용허가(voluntary licensing)와 기술이전 촉진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의료품의 공급망을 확대"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전의 자발석 실시 사례를 보았을 때, 제조허용 범위를 제한하거나 수출을 금지하는 등의 제한 조건을 두어 접근권을 확대하는데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민간 사이의 계약이기 때문에 국가가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개입하기가 어렵다. 기술이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각 국에서는 강제실시 등의 TRIPS 유연성 조항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절차의 복잡함이나 패권국의 무역보복 등으로 가장 현실성이 떨어지는 선택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 도하선언의 가장 큰 의미는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 등 유연성을 확대하는 조치를 이끌어냈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러한 조치들이 실질화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시도하고 싸워야한다. WTO, WIPO, WHO가 함께 발행한 보고서에는 트립스와 트립스 유연성이 균형을 이뤄야 하고, 유연성 조항이 충분히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균형을 맞추려면 WTO에서 강제실시를 좀 더 빠르고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고, 유연성 조항을 무력화하는 무역보복 등의 행태를 막을 수 있는 벌칙조항이라도 신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 의약품이 공공재로서 생산되고 분배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기존의 지식재산권 제도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은 최대한 싸야하고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라는 명제를 확산시키고 관철시키는, 대중 운동을 하는게 먼저가 아닐까라는 고민도 든다. 지금 백신 기술독점을 저지하기 위한 논거로 우리는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공적자금이나 공적 혜택을 덜 받은 화이자는 기술에 대한 소유권을 더 인정해줘야하고, 좀 비싸도 되는 것일까? 결국 제약 자본이 이미 우리 모두를 '수탈'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진실을 더 많이 퍼트리고 바이오가 '미래 먹거리'라는 산업논리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지를 보다 많이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 이 글은 <코로나19 시대 의약품 접근성을 관통하는 논의들> 간담회 토론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간담회 자료는 건강세상네트워크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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