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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판공비 공개하라던 법원, 정작 자신들은 비공개

opengirok 2009. 7. 17. 15:08

소위 '판공비'라 일컬어지는 국가기관과 자치단체장들의 업무추진비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보공개 대상으로, 법원은 업무추진비를 공개하지 않는 기관장들에 대해 줄곧 공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업무추진비는 국민의 땀이 담긴 '세금'이라는 의미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투명한 예산 집행의 필요성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치단체장들은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으로 판결이 나기 전까지 업무추진비 내역을 곱게 공개하지 않는다. 왜일까. 정보공개법에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일부 단체장들이 관행적으로 '쌈지 돈'으로 쓰이던 업무추진비 공개를 꺼리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크다.

 이런 가운데 관심을 끄는 재미있는 사건(?)이 법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법원공무원들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그리고 전국의 각급 법원장들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밝히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한 업무추진비 정보공개청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결과는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법원이 정보공개를 꺼리는 자치단체장들에 대해 엄격하게 정보공개 판결을 내리면서도, 정작 자신들에 대한 업무추진비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서는 '무딘' 잣대를 들이대며 구체적인 사용내역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기자가 취재에 들어가자, "법원 스스로 자신들의 정보공개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 "법원 스스로 자기들 판례도 안 지키면서 다른 기관들에게는 어떻게 정보공개 판결을 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의 알 권리를 옹호해야 할 법원이 오히려 알권리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등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법원노조 1차 정보공개 청구... 법원행정처 포괄적 공개

 도대체 법원에서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번 사건을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단독 취재했다.

 먼저 법원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오병욱)은 지난 5월25일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 사용 세부내역(2008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서를 법원행정처에 보냈다.이날 법원노조는 법원행정처장은 물론 서울고등법원장 등 전국의 26개 각급 법원장들에 대해서도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공개할 것을 함께 요구했다.

 법원노조는 "업무추진비 집행에 대해 법원구성원은 물론 모든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사법행정과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각급 법원장들은 외견상 정보공개청구 요구에 응했다. 하지만 법원노조는 세부내역이 공개가 안 돼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업무추진비의 유형별 총액만 공개하고 구체적인 사용내역과 일자 등은 밝히지 않았고, 증거서류(지출결의서, 영수증 등) 또한 열람이나 사본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비록 포괄적이지만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법원행정처는 지난 6월11일 "2008년도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는 총 372건에 1억 1539만원의 예산을 집행했다"며 건수와 총액 사용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을 법원노조에 보내왔다.사용내역을 살펴보면 먼저 새로운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도입에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유관기관 등 외부기관 인사 초청 27회에 걸쳐 1468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공판중심주의 확대를 위한 예산도 포함됐다.

 또 전국의 각급 법원장과 사무국장 등 다양한 계층을 초청해 의견수렴을 하는데 27회에 걸쳐 1212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고려했다는 경·조사 화환 대금 등으로 217건에 3176만원, 우수직원과 격무부서의 격려 및 위로 등으로 22회에 2788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이밖에 대법관 제청자문회의, 세계여성 법관회의 행사, 광복절 행사, 식목일 행사, 복지단체 및 국군장병 위문행사 및 전국법원 우수공무원들을 초청해 치하함과 아울러 격려하는 등 25회에 걸쳐 2895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고 법원행정처는 설명했다.

 2009년 1월부터 4월까지 대법원장 업무추진비는 총 101건에 3031만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서울과 부산 등에 민사조정센터 설립을 추진하면서 유관기관·외부인사 초청간담회를 갖는 등 12회에 걸쳐 554만원을 집행했고, 법관과 직원들을 초청해 사법행정과 재판절차의 간소화 및 민원업무제도 개선을 위해 14회에 걸쳐 466만원, 법관 및 직원들의 경·조사 화환 대금으로 63건에 722만원의 예산을 썼다.또 격무부서 직원 사기진작을 위한 격려 등으로 7회에 813만원, 이밖에 헌법기관장과 유관기관 인사 등 명절 선물에 답례품 및 각종 행사지원을 위한 5건에 476만원의 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노조 현성훈 사무총장은 업무추진비 공개 청구에 대해 "그동안 한 번도 지적되지 않은 대법원장과 각급 법원장들의 업무추진비 사용실태를 확인하고 사용내역의 분석을 통해 적정한 업무추진비 사용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그런데 현재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는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반면, 유관기관인 법무부는 홈페이지에 장관과 차관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유형별 집행 내용을 보면 간담회 등이어서 굳이 공개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를 찾기 어렵다. 법무부는 간담회의 경우 어떤 기관과 했는지, 무슨 내용인지, 언제 했는지, 비용은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공개하고 있어 법원노조는 법원행정처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실제로 현성훈 사무총장은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미루어보면 업무추진 집행에 있어 부적합 집행이나, 과도한 집행이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2차 정보공개 청구 비공개 결정에 법원노조 발끈

 법원행정처의 이 같은 정보공개에 대해 법원노조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미흡하다고 판단해 지난 6월17일 재차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내용은 "사법행정과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업무추진비 사용 세부내역과 예산집행의 적법성 검증의 한 방법으로 증거서류(지출결의서, 영수증 등)에 대한 열람 및 사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법원노조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멍해졌다. 법원행정처가 업무추진비 상세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결정을 7월1일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청구한 정보에는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영업상 비밀 및 개인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청구한 정보가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과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법원행정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6호 및 제7호를 근거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비공개 결정을 한 것.이 법 제6호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7호는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정보공개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공개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현성훈 사무총장은 "어느 기관보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법원에서 공개를 거부하는 것이 결국에는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자치단체장의 업무추진비가 법원 판결로 공개되는 현실에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각급 법원장들의 업무추진비가 공개되지 않은 것은 사회투명성과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사무총장은 그러면서 "이런 점에서 법원노조는 심히 우려를 표명하며 법원이 즉각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할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향후 정보공개를 강제할 수 있는 절차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다만, '강제할 수 있는 절차'라는 것은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법원행정처 비공개 결정은 법원 판결과 정면 배치"

 법원행정처의 이번 비공개 결정은 그동안 법원이 취해 온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최근 판결을 보면 광주지법 행정부(재판장 김진상 부장판사)는 지난 1월 목포시민연대가 목포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경영·영업상의 비밀 등이 아니라면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 대상"이라며 "개인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외한 시장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일선 법원은 이 같은 판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2004년 대법원은 참여연대가 서울시장을 상대로 낸 업무추진비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이번에 법원노조가 요구한 것인 '증빙서류(지출결의서, 영수증 등)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당시 서울시의 증빙서류량은 무려 4만 6000페이지 분량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분량이 방대하더라도 이들 증빙서류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면 사본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렇기 때문에 법원노조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내놓은 비공개결정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고,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대법원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여러 가지 검토를 통해 판단했을 것"이라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정보공개청구 거부하면 자기들 판결 스스로 뒤집는 것"

 법원행정처의 비공개 결정에 대한 외부의 시각은 싸늘해 법원이 뭇매를 맞고 있다.하승수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약 법원행정처가 그런 태도를 보였다면 참으로 문제"라며 "대법원이 스스로 확립한 판례에 따르면, 업무추진비 지출 관련 지출결의서나 지출증빙서류는 원칙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만 "문서 가운데 개인 인적사항이나 금융기관의 계좌번호가 포함된 경우에는 그 부분만 비공개하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하 교수는 특히 "당연히 법원 스스로 확립한 판례상의 기준에 따라 법원에서 쓰는 업무추진비 관련 정보도 공개가 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는다면 국민의 알 권리를 옹호해야 할 법원이 오히려 알권리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하 교수는 변호사 출신으로 199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울시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해 화제가 됐으며 정보공개 소송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이후 서울의 25개 자치구와 서울지검, 국가정보원 등을 상대로도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도 "법원은 자치단체장들의 업무추진비 상세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하면서 법원 스스로는 업무추진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판결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라고 꼬집었다.전 사무국장은 "법원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해서 업무추진비와 그 외의 많은 정보를 법원 스스로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이지문 정책연구원도 법원행정처의 태도에 일침을 가했다.

 이 정책연구원은 "법원이 자기들 판례도 스스로 안 지키면서 어떻게 다른 기관들에 대해서는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라고 판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대법원이 법원노조의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하면 자기들 판결 내용을 스스로 뒤집는 것으로 문제가 크다"고 질타했다.그는 "다른 기관과 달리 국회와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은 홈페이지에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정보공개는 갖고 있는 자료를 공개하는 것인데 업무추진비와 관련해서는 갖고 있는 자료가 없어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며 "도대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이번에 법원노조에 포괄적으로나마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한 것을 보면, '자료가 없어 공개할 수 없다'는 법원행정처의 해명은 거짓말이 된 셈이어서 이 또한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이 정책연구원은 업무추진비 내역 공개와 관련해 민간인 부분은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신상에 관한 정보만 가린 채 비공개로 하고 나머지는 전부 공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특히 "법원이 자치단체장들에 대해서는 업무추진비 공개 판결을 내리면서 자기들 부분은 수용하지 않으면 다른 기관들이 따르겠느냐"고 힐책하며 "누구보다도 더 법을 준수해야 할 대법원이 비공개하는 것은 맞지 않다. 즉시 대법원장 등에 대한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상세내역 공개해 사법신뢰 쌓은 밑거름 계기 삼아야

 사법부 수뇌부들은 국민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다고 인식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법신뢰 회복을 위해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며 소위 '잘 봐 달라'며 목청껏 호소한다. 최근에도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당시의 촛불재판 개입으로 사법신뢰가 땅에 떨어져 전국 법원의 판사들이 직접 나서 잇따라 '판사회의'를 개최하며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등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번 법원의 이중적인 태도는 사법신뢰를 회복하고 쌓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밝힌 유형별 총액을 보면 법무부와 유사해 구체적인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법원행정처가 지금이라도 빨리 업무추진비 상세내역을 공개해 사법신뢰를 쌓는 밑거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