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난쟁이에서 골리앗까지- 풍동 철거민을 바라보며

opengirok 2009. 4. 13. 15:22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하규 회원

  검은 스크린. 여러 개의 망치가 콘크리트 벽을 부수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간간이 무언가 무너지는 묵직한 소리 그리고 파편과 가루들이 어지럽게 떨어지는 소리들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들려온다. 잠시 후 화면이 밝아오면서, 어딘가를 무기력하게 쳐다보는 노인의 얼굴이 한동안 클로즈업된다.

이 두 장면은 2002년 대한주택공사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 인근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을 폭로하는 김경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골리앗의 구조’의 첫 장면이자, 70년대 힘없고 소외된 자들이 희생되는 사회 구조를 드러낸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현재로 호출하는 이미지이다.


  영화는 풍동 철거민 대책위원회 위원장 채병남의 진술을 담담히 들려주면서 그 사이 사이 철거민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격렬하게 대치하는 장면들을 삽입해서 보여준다. 채병남 위원장의 진술을 정리해보면 그들이 대치했던 상대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건설업체와 용역업체 직원들, 대한주택공사와 관할구청과 경찰과 소방서 같은 공공기관들, 그리고 여론 형성 주체들이다. 

  건설회사는 철거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용역업체 직원들을 고용하고, 용역업체 직원들은 다음 계약을 손쉽게 수주하기 위한 실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당시 고공크레인 끝에 달린 컨테이너에 몸을 실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무장한 채 철거민들을 공격해 왔다고 한다. 

  골리앗은 이들과 맞서기 위해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 만든 구조물로서 최후의 근거지이다. 채병남 위원장은 물리적 근거지가 없으면 버틸 수 있는 힘이 상실된다며 용역업체 직원들이 가장 먼저 건물을 부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과정을 철거민들은 ‘침탈’이라고 부르는데 침탈에는 똥을 퍼붓고 도망가거나, 옆집에 불을 지르거나, 죽이겠다는 협박 등이 동반된다.
 
  이 폭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업무방해와 폭력으로 2명이 구속되고 5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쇠(유리)구슬을 강력하게 쏘고 화염병을 더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한 새총을 사용하고, 옆 건물에 불을 지르고, 최루가스 및 정체불명의 액을 철거민을 향해 뿌려도 그들은 증거불충분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채병남 위원장은 경찰이 이처럼 법을 선별적으로 적용하여 용역업체 직원들의 불법과 폭력에는 눈을 감고 철거민의 작은 저항은 잡아가거나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에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불어 그들은 건물에 불이 나도 출동하지 않는 소방서나 관할 구청의 태도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쁜 사람, 불법적이고 떼를 쓰는 사람, 보호할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시선과도 맞서야 했다. 


 이 영화를 보며 필자가 가장 불편했던 것은 용역깡패라고 불러도 무방할 용역업체 직원들에 대한 것이었다.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서 공권력의 이름으로 철거민들을 화형시킨 용산참사 때에는 용역깡패들이 경찰과 공권력을 공유했다는 것이 전국민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사적 분쟁의 당사자인 용역깡패가 공권력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활동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결국 가난한 자들을 처리했다는 현실이 대단히 불편하고, 무서웠던 것이다. 

  조세희는 이미 30여 년 전에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이러한 사회상을 정확히 그려냈다. ‘상계동 올림픽’과 같은 독립영화, ‘비트’나 ‘비열한 거리’ 등 파급력 있는 상업영화에서도 철거깡패들은 등장한다. 박정희,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정권에서 공히 철거깡패들이 공권력의 비호 아래, 혹은 직접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해 온 것이다. 철거깡패의 연원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30년 이상을 공권력과 동거해 왔다.

 철거민 문제를 무차별적인 토지개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주민에 대한 보상가와 그 지역에 세워질 건물의 분양가 사이의 비현실적인 격차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 편향적인 정부와 법원의 처사는 언제든 견제해야 할 비판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들은 공적인 영역, 정치의 영역, 법의 영역에서 대립하고 합의되면서 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용역깡패라는 사적 폭력은 공공성과 정치와 법의 영역에서 갈등이 해결되거나 증폭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해한다. 따라서 비록 정치와 법이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 가능성이 높더라도 사적 폭력을 공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일은 현재의 정치와 법의 성격을 광장에 공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실제 풍동 철거민 문제는 아직도 법원에 계류 중이고, 풍동 이외의 수많은 지역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뉴타운 개발로 인해 철거민과 자본의 대립은 더욱 격화될 듯하다. 
 

  풍동 철거민들은 침탈해오는 용역깡패들에 저항하기 위해 ‘골리앗’을 만들었고, 골리앗이라는 어휘에는 약하지만 약하지 않겠다는 철거민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영화 ‘골리앗의 구조’는 철거민들이 처한 사회구조적 상황을 상징하지만, 한편으로는 철거민들을 압박하는 거대한 협업 관계 주체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덧댐)
  ‘골리앗의 구조’는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소수자에 관한 사회문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하나의 기록물로서 철거라는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당대의 사회문화의 증거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영화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며, 극영화보다 덜 주관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픽션이라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다는 전제를 관객과 공유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에 더욱 민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리앗의 구조’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전면적으로 벗어나 있던 지점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역할을 하고 있고,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 사적 폭력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과 위험성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책이 출간됐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 ‘여기 사람이 있다’는 일종의 구술기록으로서 철거에 관한 공시적, 통시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492726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