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윤여진 회원]시민단체의 정보공개운동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들

opengirok 2008. 11. 10. 16:36

윤여진 회원

윤여진 회원


정보공개,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누구나 그렇진 않겠지만, 필자가 처음으로 경험한 정보공개청구는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다. 필자는 2006년 대학원 수업 과제의 하나로 18개 중앙행정기관에 정보공개심의회 회의록을 청구한 경험이 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많이 떨렸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가 담긴 기록물을 실제로 받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임이 더 컸다. 하지만 정보공개를 청구한 뒤 필자는 약 일주일 동안 상상할 수 없는 "전화폭탄"에 시달려야 했다. 그 이유는 10분에 한번씩 울려대는 정보공개담당자의 전화 때문이었다. 담당자들은 왜 이런 정보를 청구했는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담당자들은 필자의 당황한 기색을 엿보았는지 호통을 치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업무방해를 일삼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낙인되는 기분이었다. 한편, 문서는 어떻게든 보내줄테니 청구사실을 취하해 달라고 호소하는 담당자들도 있었으며 조곤조곤 타이르는 담당자들도 있었다. 2006년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러한 공무원들의 행태를 분석하여 <공무원의 정보공개 회피 방법>을 발표하였다.

․ 최대한 공개 늦추기

․ 못 알아들은 척하기

․ 엄살 부리기

․ 청구인에게 겁주기

이러한 공무원들의 고단수 회피전략은 시민들 스스로가 정보공개청구를 포기하게끔 만든다. 모든 시민은 정보공개를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된 정보를 획득할 권리가 있지만 국가는 그것이 업무방해 혹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요구를 통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정보를 제공받는다 할지라도 요청한 내용과 맞지 않거나 극히 일부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처럼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정보공개제도는 시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공받기 위한 것이 아닌 정보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거대기업, 기관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베푸는 일종의 동정 혹은 연민을 느끼게 하는 정도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이렇게 마땅히 정보를 제공받아야 할 시민들의 권리가 점차 국가 및 공공기관의 통제와 감시로 인해 소외되어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시민단체, 정보공개의 일대 혁신을 이루다.

정보공개제도의 올바른 시행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입법화를 제기하고 정보공개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해왔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활발한 연대활동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정보공개 개혁을 벌여 온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운동은 눈여겨 볼 만하다. 시민단체는 정보공개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주체로서 사회 전반의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청구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앞장섰다. 한 예로 경실련은 경제정의 실천과 민주복지사회 건설이라는 설립취지에 걸맞게 세무조사 및 체납관련 정보공개 청구와 공적자금에 관한 정보공개청구운동을 벌여 세무비리 쳑결과 경제개혁에 앞장섰다. 또한 2003년에는 정보공개자체에 관한 문제의식을 갖고 행정학자와 공법학자 109명의 서명을 받아 정보공개법의 올바른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토지수용 및 건설허가 관련 실태를 고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참여연대는 정보공개제도와 관련하여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이다. 참여연대는 정보공개사업단을 발족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기획적인 정보공개운동(sunshine project)을 벌여 나갔다. 대표적인 운동 중 하나는 예산감시를 시민운동이다. 공공기관의 예산현황은 국민들의 가장 알고자 하는 민감한 부분이면서도 공적인 업무라는 이유로 그 동안 공개가 거부되기 일쑤였는데, 참여연대의 활동으로 판공비, 대외비 등에 관한 예산정보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가장 늦게 출범한 함께하는 시민행동 역시 전국 40여개 단체를 예산감시 네트워크로 구성하여 예산 감시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행정정보공개청구 못지않게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에도 주력하였다. 이와 같이 시민단체들이 펼친 정보공개운동은 정부의 계획과 의도 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이들이 직접 나서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운동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집단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보다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운영방식을 선보였으며 사회의 전 영역에 관여하여 잘못된 관행들을 세상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단순히 청구한 정보에 대해 결정된 사항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로 정보공개운동을 이끌어나갔다는 점에서 그 성과를 엿볼 수 있다.

획일화 된 정보공개운동,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는가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운동이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활동을 펼치고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상당 부분 공헌하였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운동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체계적인 정보공개운동이 정작 시민들과는 얼마만큼 결속력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체계적이고 조직화 된 정보공개운동은 사회의 이슈를 만들고 사회문제에 대한 보다 많은 성과물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이 지속되다면 함께 동참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소외감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이는 시민단체의 간부급 인사가 한 포럼에서 말했듯이 시민단체들이 말하는 시민참여란 고작 뛰어난 시민운동가가 만든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라는 맥락과도 연관된다. 이슈와 성과 중심의 정보공개운동이 갖는 아쉬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보공개운동의 궁극적 취지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보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공공기관의 행정업무에 관한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정보공개운동을 벌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단순한 이벤트성 정보공개운동은 운동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시민들에게 더 많은 성과물을 보여주기 위해 보도자료를 만들고, 성명을 발표하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 결과를 언론에 보도하는 등 일방적인 전달에 그치기 쉽다. 이와 같은 활동은 시민들의 표면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지 몰라도 결국 시민들은 그런 정보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 될 뿐이다. 이슈와 성과 중심의 정보공개운동은 단기적인 성과는 얻을 수 있을 지라도 지속성을 갖기에는 역부족으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정보공개운동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보다는 소수의 전문가 혹은 명망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지나친 과잉대표성으로 인해 시민들의 욕구를 제대로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정보공개센터, 새로운 소통의 장(場)으로

국민의 알권리 실현, 투명한 행정업무 달성을 목적으로 시행된 정보공개제도는 시민단체의 운동을 통해 보다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비리와 침묵속에 갇혀 있던 비합리적인 관행들이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청구운동을 통해 상당부분 밝혀졌으며, 이런 점에서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운동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그러나 권력에 대항하여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던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운동 역시 운동의 권력화, 조직화에서 그리 자유롭지는 못했다. 시민참여가 배제된 정보공개운동, 이슈와 성과중심의 정보공개운동은 양적으로는 많은 성과물들을 거둘 수 있었지만 질적으로 향상된 실질적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시민참여형 정보공개운동으로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정보공개운동을 펼쳐나감에 있어 가장 유념해야 할 사실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설정이다. 지금까지 정보공개운동에서는 운동의 주체를 시민단체이고 객체는 시민들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시민들은 시민단체의 활동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고 시민단체가 벌인 활동의 결과물들만 받아보는 수동적 객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제 시민들도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철학자 칸트가 인가의 이성이 외적 세계에 대해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전통적 진리관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선험적 주관안에서 능동적으로 정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정보공개운동에 있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시민은 이제 정보공개운동의 객체가 아닌 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지지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은 정보공개제도와 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담당자들에게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제도는 국민과 국가간 서로 비난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9월에 창립한 정보공개센터의 역할과 기대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보공개센터는 이전의 시민단체들이 보여준 정보공개운동 방식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시민들의 작은 의견에 귀 기울이며 시민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보공개센터가 모든 시민들이 즐겨찾는 소통의 공간이 되길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