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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민선5기 ‘새로운 자치 시대’]‘주민참여예산제’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opengirok 2010. 7. 7. 10:32


 

ㆍ2004년 광주 북구 첫 도입, 246개 지자체 중 99곳 시행
ㆍ실제 손댈 수 있는 예산 적고 주민 외면 사문화된 곳도
ㆍ“공무원들이 불편한 제도… 단체장 의지가 정착 관건”

# 지난달 임기가 끝난 7대 서울시의회의 별명은 ‘거수기’였다. 행정부 사업을 의회가 제동 걸지 않았다. 시장과 시의원 다수가 같은 당이었기 때문이다. 한강르네상스, 디자인서울 등 시장의 역점 사업 예산안이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통과됐다. 시민들이 관련 사업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시 예산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는 없었다.

# 2006년 울산 북구는 한나라당 단체장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릉산에 타워를 만드는 ‘랜드마크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주민참여예산제 시민위원들의 힘이었다. 구청장이 사업을 부활시키려고 했지만 이번엔 구의원들이 시민위원들의 결정 내용을 근거로 저지했다.

성숙한 주민참여 교육은 필수 울산 동구 주민들이 지난달 21일부터 열린 주민참여예산학교에 참석해 예산 편성과 운용방안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 울산 동구 제공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은 해당 지자체의 정책 방향과 세부 사업 내용이 모두 드러나 있는 ‘거울’이다. 주민들이 예산 편성 및 심의·의결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예산이 곧 사업이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예산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다. 세계 최초로 참여예산제를 시행한 곳은 1989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시다. 이 제도는 UN에 의해 ‘세계 40대 훌륭한 시민제도’로 꼽혔고, 세계은행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가장 모범적인 협력 모델로 인정했다. 브라질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한 지방자치단체는 92년 12개에 불과했지만 2003년에는 200여개로 빠르게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한 것은 2004년 광주 북구. 2006년 당시 행정자치부가 표준조례안을 만들어 17개 지자체가 도입했고 이후 4년간 80개 지역이 추가로 참여예산제를 도입했다. 그렇지만 현재 제정되어 있는 참여예산조례는 대부분 2006년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만들어 각 지자체에 시달했던 조례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조례는 “할 수 있다” “둘 수 있다” 등으로 규정하는 데 그쳐 주민들의 참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려면 주민들이 적절하게 참여할 수 있는 지역회의·예산위원회·예산협의회·예산연구회 등의 구조를 갖추고 실질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현재 주민참여예산제도 조례가 지정된 90여개 지자체 중 ‘지역회의’를 규정하고 있는 곳은 8개에 불과하다.

반면 광주 북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주민참여예산제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 이곳은 전국 처음으로 주민예산참여제를 시행하다 보니 초기에는 예산에 대한 이해부족, 행정에 대한 원초적 불신까지 더해지면서 불안정하게 시작됐다. 여기에 예산편성에 머물지 않고 ‘심의 단계’까지 참여해야 한다는 의욕이 넘치면서 한때 의회와 갈등을 빚는 상황도 있었다. 지역·집단 간 이기주의에 빠져 자기 지역에 예산을 끌어오려는 다툼도 있었다. 북구 기획감사실 기명수 주무관은 “제도가 정착되어 가니 이젠 자치구 전체를 배려하면서 사업 순위를 결정하는 등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직접 예산을 주민이 짜면서 공직자와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지역 공동체를 튼실하게 하는 계기도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심체는 북구주민참여예산제 시민위원회. 26개 동에서 3명씩 나서고 교수 등 전문가 15명 등 모두 99명이 활동하고 있다. 무보수다. 이들은 6월부터 예산이 확정되는 11월 말까지 합숙토론회 등을 통해 사업 우선순위 결정, 신규 사업 제안 등을 통해 공무원들과 함께 예산을 짠다. 위원회 총괄간사 이칠성씨는 “전국 처음으로 도입돼 전파되고 있는 제도를 꾸리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보람도 크고 책임감도 느낀다”면서 “참여위원들의 실력이 점차 늘면서 편성뿐만 아니라 결산 절차에도 참여해보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한계도 있다. 제도는 잘되어 있지만 주민들의 요구가 실질적으로 예산안에 편성될 수 있는 통로가 좁다는 점. 제도만 있고 운영이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이 예산안을 요구해도 집행부에서 안 받으면 그만인 경우도 있다.

울산 동구는 자치단체장의 의지로 참여예산제가 도입·시행된 경우다. 2005년 민주노동당 단체장이 제도화시켰다. 시민위원회는 5개의 분과위원회, 지역회의, 시민위원회 총회로 구성된다. 각 분과위원회 개최 이전에 동별로 진행되는 지역회의에서 각 동의 현안 사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이를 집행부가 검토하고 시민위원회에 보고한다.

시민위원회 각 분과는 지난해 사업과 올해 사업계획을 보고하고 현장을 방문한 뒤 예산안 우선순위 검토를 한다. 각 분과위원회에서 심의된 안은 각 분과위원장과 집행부 동수로 구성되는 조정회의에서 최종 결정되고 이 결정내용은 총회에 보고된다. 울산시민연대 지방자치센터 김지훈 부장은 “처음에 우려되었던 부분은 오히려 주민들 사이의 학습을 통해 해결되었다”며 “이 과정을 통해 지방자치를 활성화시키는 민주주의 교육의 장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동구의 문제도 역시 제도가 아니라 형식적 운용이다. 지자체가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절대적으로 작다 보니 지역 현안을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이 거의 없다. 예산 규모가 작은 자치구에서는 경직성 경비, 계속비 사업, 매칭 사업 등을 제하고 나면 쓸 수 있는 돈이 없는 것이다. 참여예산제가 예산의 투명성은 해결할 수 있지만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 가기는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풀뿌리 주민단체가 허약하다 보니 주민들의 참여가 미약하다는 게 결정적 한계다. 제도가 오히려 지역 기득권 세력의 ‘담합’에 휘둘릴 수도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나 회원들이 참여하는 것으로는 물리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예산센터 채연하 선임연구원은 “이 제도가 잘 정착되려면 단체장의 의지가 관건”이라며 “단체장의 권한인 예산 편성권을 주민들과 협의하며 공유하겠다는 수평적 분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예산이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주민들 스스로 예산 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