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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민선5기 ‘새로운 자치 시대]’(1) 투명행정의 첫걸음, 정보공개

opengirok 2010. 7. 5. 09:56


 

ㆍ공공기관 정보공개법 시행 12년
ㆍ불리한 정보 감추고 비틀고… 공개 기준은 ‘고무줄’

1. 김길태·조두순·김수철 사건 등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어린이를 둔 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지켜야 할지 막막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성범죄자가 얼마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은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성범죄자 알림e’ 서비스뿐이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현재 등록된 열람 대상자가 없습니다”라고 나온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0년 1월1일 이후 아동·청소년 성범죄자 중 법원에서 공개 명령을 선고받은 경우만 공개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관할 경찰서에 직접 가서 열람해야 한다. 이마저도 시간이 제한돼 있고 자녀가 있는 경우에만 열람이 가능하다.


2. 2009년 7월. 강원 화천군 농민 80여명은 4대강 사업을 이유로 하천부지 점용권을 모두 취소당했다.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군수를 찾아가 하천부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수차례 면담했지만 군수는 “정부 일이라 자치단체는 잘 알지도 못하고 권한이 없다”고만 답변했다. 결국 농민들을 대신해 화천군 불도암 주지인 도류스님이 국토해양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화천군에서 이미 8개소의 사업계획을 제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농민들은 군청의 거짓말에 분노했다.

8억 넘게 쓴 서울시가림막 4일 서울시 신청사 공사장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가림막 모습. 서울시는 그동안 가림막 설치와 네차례에 걸친 디자인 교체에 6억2000만원을 썼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8억원 넘게 쓴 것으로 드러나 정보공개를 부실하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 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것은 1998년이다. 정보공개 청구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2004년 정보공개법이 전면 개정됐고, 2006년에는 행정정보 공개 온라인 서비스인 통합정보공개시스템(www.open.go.kr)도 개통됐다.


지난 12년간 정보공개 청구 건수는 1998년 2만6338건에서 2008년 29만1339건으로 무려 1727%가 증가했다. 2006년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정보공개 청구 건수는 전년도에 비해 2008년에 24%가 증가했다.


이중 지방자치단체는 2008년 18만2077건의 청구를 받아 82%를 전부공개했고 나머지는 부분공개(10%)하거나 비공개(8%) 처리했다. 비공개 이유는 정보가 없다(36%)거나 법령상 비밀·비공개 사유(26%), 개인의 사생활 침해(12%) 등이다. 통계 수치만 보면 정보공개가 잘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허울뿐인 경우가 상당수다.




 

가장 큰 문제는 행정기관이 정보를 축소하거나 왜곡한 채 공개하는 경우. 서울시는 지난 1월 신청사 공사장에 설치한 외장막(가림막) 디자인에 다섯 달 동안 6억2000만원 이상 썼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더 많이 쓴 것으로 드러났다. 네 번의 디자인 교체에 8억원이 넘는 돈을 쓴 것이다.


공무원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도 지자체는 ‘실수’였다며 덮는 경우가 많다. ‘시민이 만든 밝은세상’의 이상석 사무처장은 “2006년 전남 순천시에 부시장·시의회 의장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담당 공무원이 허위 정보를 제공해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300만원의 벌금형까지 받았다”며 “그러나 담당 공무원들은 높은 사람을 보호했다는 이유였는지 오히려 좋은 자리로 승진하더라”고 말했다.


정보 공개 기준도 자의적이다. 같은 정보에 대해 한 지자체는 공개하고 다른 지자체는 공개하지 않는 식이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4월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지자체에 지시한 ‘4대강 정책자문단’에 대해 경기도와 부산광역시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부산시는 40명의 자문단의 이름·소속·직책까지 공개했다. 반면 경기도는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부장은 “도시가스요금 산정시 기준이 되는 용역 보고서를 16개 광역단체에 요구했는데 서울시와 경기도만 공개를 안 했다”며 “바로 행정소송을 거니까 그 다음날 서울시와 경기도 공무원이 동시에 찾아와서 ‘미안하다. 담당자가 잘 몰랐다’며 공개하더라”고 말했다.


악의적인 정보 비공개도 문제다. 행정기관에서 집행한 사업의 약점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공개 시한을 연장하다가 비공개 결정을 통보할 때가 많다.


남양주시는 지난해 남양주시장 업무추진비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열람 후 공개처리’ 통보를 했다. 직접 시청으로 와서 열람을 한 후 원하는 부분만 영수증 등을 복사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청구인이 가기 전날 전화하자 당시 비서실장은 “우리가 지정한 날짜에 오라”며 미뤘다. 결국 이 사건은 다시 행정심판으로 넘어가면서 정보공개는 늦춰졌다.


2008년 정보공개 운영실태 평가 결과 중앙행정기관 정보 공개 수준은 88.03점으로 2007년도 76.8점에 비해 수준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방자치단체 정보 공개 평가 결과는 평균 67.37점으로 중앙행정기관보다 낮게 나타났다. 10일 이내의 법정처리기간 준수율은 93.8%로 높은 수준이지만 이도 2007년보다 1~2점 정도 낮게 나타났다. 정보공개 이용자 만족도도 57.9점으로 전년도(63.9점)보다 낮아졌다.


공공기관의 부실한 홈페이지 운영도 문제다. 어느 정보가 어디에 들어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검색도 쉽지 않다. 질병관리본부 사이트에서는 전염병 역학 조사 결과를 열람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런 사이트가 있는지도 모르고 막상 사이트를 찾아도 어디에 정보가 있는지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보공개센터 이사를 맡고 있는 도류스님은 “공개하지 못할 정보가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주민들의 정보공개청구 활동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행정기관의 오만함을 줄일 수 있다”며 “정보공개청구가 ‘권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민들이 먼저 정보공개를 요구하지 않아도 공공기관이 정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는 것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