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이화동 칼럼

비밀 투표 원칙에 위반된, 제주지사 주민소환투표

opengirok 2009. 8. 27. 10:27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는 끝났다. 투표율이 낮아서(11%) 개표가 무산되면서 소환투표는 종료되었다. 어제(26일)의 투표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투표과정에서 제기된 관권개입, 투표방해 등 각종 불법 의혹에 대해서는 앞으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뒤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편 투표의 결과와 의미에 대해서도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 난무하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새로운 갈등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결이 아니라 '불개표'가 맞다

  일부 언론에서는 어제의 결과를 놓고 '부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부결'이라는 표현은 개표를 했는데, 반대표가 많이 나왔을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어제처럼 개표 자체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부결'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

  법조항을 봐도 '불개표'라는 표현이 맞다.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22조 제2항에서도 "3분의 1에 미달하는 때에는 개표를 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발표문에서도 "개표를 하지 아니함"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데도 굳이 '부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개표 자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결도 아니고 부결도 아니다.

  갈등을 매듭짓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주민소환투표를 하면 찬성이든 반대이든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제처럼 개표를 하지 못하게 되면 찬성, 반대의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내려지지 못한 것이다. 이는 마치 선거를 했는데 당선자를 확정짓지 못하게 된 경우와 비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결과에 승복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사실 주민소환투표의 결과는 찬성 비율과 반대 비율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선거에서 투표결과가 득표율을 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의미의 투표결과는 개표를 해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제 한 투표는 개표를 하지 못했다. 이것은 현행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이 가진 허점이기도 하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선거에서도 개표를 해서 결과를 확정짓는데, 주민소환투표의 경우에는 개표를 하지 않아서 투표결과를 알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소환투표에서 결론이 내려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 내에서 갈등과 현안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왕 투표를 한다면 결론이 내려져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어제의 투표는 그렇지 못했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당연히 '투표불참'으로 방향을 잡고 여러 수단들을 동원해서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데에 골몰한 김태환 지사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 김태환 지사는 자신의 자리는 보전했는지 모르지만, 김태환 지사의 행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에도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갈등을 유발한 것이다. '읍·면·동별 투표율'까지 언급하면서까지 투표불참을 유도·압박한 것이 결국 관권개입 의혹과 투표방해 논란을 낳았다. 이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정정당당하게 투표운동에 임해서 신임이든 불신임이든 결론을 내는 것이 옳았다.

  또한 이번 주민소환투표의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도 짚어 보아야 한다. 사실상 이번 투표의 과정에서 비밀투표, 자유투표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투표장에 투표하러 가는 사람은 소환에 찬성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투표하고 투표의 내용이 비밀에 붙여진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선거관리위원회는 현행 법조항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겠지만, 투표참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은 선거관리위원회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지난번 경기도 하남시장을 상대로 한 주민소환투표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제주 주민소환투표의 과정에서도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어야 개표하도록 하고 있는 조항의 문제점은 여실히 드러났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이상, 소환 대상자는 소환반대운동이 아니라 투표불참운동을 선택하기 쉽다.

  그리고 투표참여-투표불참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지는 순간, 투표에 참여하러 가는 행위 자체가 소환찬성 행위로 인식되어 투표의 기본원칙인 비밀투표, 자유투표의 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비밀투표, 자유투표의 원칙은 선거뿐만 아니라 주민소환투표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라고 여러 국제문헌에서도 강조되고 있는데, 한국의 주민소환 투표에서는 이 원칙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 조항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 조항을 악용하고 있는 소환대상자들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애초의 입법취지와 달리 악용된다면 법개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소환투표의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정보를 접할 기회가 너무 제한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최소한 투표운동을 선거에 준하는 수준까지는 허용할 필요가 있다.

  미완의 시도, 그 의미는?

  이번 주민소환투표는 결국 개표를 하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김태환 지사는 오늘부터 업무에 복귀한다. 해군기지 문제를 비롯하여 주민소환투표까지 하게 만든 여러 갈등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유권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밝혀지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소환투표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주민소환투표를 통해 누가 주권자인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그리고 선출직 공직자라 하더라도 임기 중에 잘못하면 해임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선출직 공직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졌다. 민주주의와 소통을 이야기하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노력과 진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전인수 격으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오만과 독선이 아니라 겸허한 자세와 열려있는 귀, 그리고 소통능력이 중요하다. 불도저식의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민주적인 정책결정능력이 필요하다. 이 점을 주민소환투표의 과정에서 선출직 공직자들이 깨달았어야 한다.

  특히 김태환 지사가 이번 주민소환투표의 과정에서 이러한 점들을 깨달았어야 한다. 그 여부는 오늘 이후 김태환 지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불통'의 도지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