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김대중, 전라도, 지역감정에 관한 기억들

opengirok 2009. 8. 11. 16:49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누구나 그랬듯이 나도 어릴 적부터 수많은 반공교육을 받아왔다. 똘이장군부터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반공영화들을 보면서 서서히 내 머리속은 세뇌당했다.

친구들과 모이면 뿔 달린 북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그들이 남한으로 쳐들어 올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교육들은 어린 동심을 후비파고 들어가 나의 정신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반공교육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지독한 것은 지역감정에 대한 교육이었다. 고향이 대구라 그런지 유난히 어릴 적부터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실체도 없었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는 데 조금만 불친절하면 고향이 전라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는 분들이 있었고, 혹시 전라도 사람과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시시비비는 필요 없었다. 모든 원인은 전라도였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런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여지없이 가족, 친지라는 것이다. 가족 행사가 있어 정치토론이라도 벌어지면 김대중과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얘기들 뿐이었다(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얘기들은 내 몸 속에 암 덩어리처럼 살아 움직여 나를 서서히 피폐시켜 나갔다. 어린 시절의 전라도에 대한 생각은 그렇게 각인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폭력적 교육은 지금까지도 위력을 발휘하며 내 몸 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얘기 몇 가지를 부끄럽지만 끄집어 내보도록 하겠다.

# 장면 1

중학교 1학년때(87년) 친척 할머니 댁에 갔을 때였다. 맛있는 과일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뉴스에서 김대중씨가 한복을 입은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흥분을 하시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흥분된 목소리로) 저놈아 빨갱이야."
"할매 저분이 왜 빨갱이라예?"
"저놈아가 북한에서 사주 받아 광주폭동 일으켰어. 그래서 전쟁이 날뻔 했던끼라."
"마자요? 근데 어떻게 대통령 후보에 나올 수 있노?"
"그러니까 세상이 말세지. 저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대구사람 다 죽는다 알것제."
"네…."

지금도 너무나 흥분하며 얘기하던 할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얘기를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김대중씨가 빨갱이라는 신념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슬프게도 할머니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 장면 2

중학교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갑자기 강의를 하시다가 광주터미널에서 표 반환 문제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 주셨다.

"제가 표를 잘못 구입해서 광주터미널에서 매표원과 싸우고 있었어요. 근데 제가 대구 사투리로 막 크게 얘기하니까 주위사람들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학생들 놀란 눈으로) 왜 일어났는데요?"
"서서히 저에게 다가오는 거예요. 옆에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말이에요.전 무언가 느낌이 이상하다 생각해서 표 반환을 포기했어요 그리고는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얘기를 하시고는 선생님은 대구사람들은 광주사람들에게 별 다른 감정이 없는 데 전라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 지으셨다.

그 수업 장면은 너무나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의 얘기가 사실인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카더라'식의 전라도 얘기는 수업시간에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 장면 3

군대가기 직전이었다. 군대라는 공포를 이기기 위해 수많은 선후배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 때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형들이 자신의 경험을 술자리 안주로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꼭 그 얘기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전라도 고참을 만나서 고생한 얘기였다.

"진한아 군대가면 전라도 고참을 조심해야 한다."
"왜요? "
"전라도 사람들은 겉으로는 잘해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뒤통수치는 사람들이다."
"전라도 고참 안 만나게 기도해라."

그 얘기 이후 전라도 고참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수많은 기도를 드렸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군대를 입대한 후 바로 위 고참으로 광주 사람과 대구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나의 아버지 군번(나보다 정확히 일년 먼저 입대한 군번), 또 한 명은 나의 분과고참이었다(이 사람이 대구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두려워하던 광주 고참은 제대하는 그날까지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휴가라도 나가면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 주셨다. 제대할 때도 취업할 때 없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까지 남기고 나갔다.

반면 대구 고참은 제대하는 그날까지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 새롭다. 그에게 맞은 기억은 제대한 지 8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꿈속에서 가끔 출현한다. 그때 선배들의 얘기가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지 알게되었다.

이 외에도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얘기를 들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별다른 근거 없이 그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악의적으로 왜곡한 얘기들 뿐이었다.

이런 기억을 아련한 추억으로 끝내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암울하기만 하다. 북한 사람들마저 우리의 형제로 느끼며 각종 스포츠 대회를 눈물 바다로 만들고 있지만 동서의 지역감정은 지금까지 그 질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많이 편찮으시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사회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분이다. 전두환의 집요한 회유에도 광주시민들과 함께 죽겠다는 발언은 지금도 감동적이다. 노벨상을 받으셨다. 그리고 남북관계를 열었던 분이다.

아직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할일은 많이 남으셨다. 훌훌 털고 쾌유하시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