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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청와대 안에서 꼭꼭 숨어라?

opengirok 2015. 7. 27. 14:19

보통 시민이 청와대에 문의할 것이 있거나 민원을 넣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별한 ‘줄’이 없다면 일단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속해 연락처를 파악할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좀 특이하다. 부서별 연락처는 물론 담당자 이름까지 공개된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오직 대표번호(02-730-5800)만 나와 있다.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 알 수 있는 건 청와대 홈페이지와 주소 안내뿐이다.


민원이나 문의 사항이 있으면 일단 ‘음성 녹음’을 남긴 뒤, 청와대로부터 회신을 기다려야 한다. 회신은 문자 메시지로 오는데, 또 다른 번호의 대표번호(교환실)를 알려줄 뿐이다. 이 번호를 통해 관련 부서에 문의 내용을 남긴 뒤 다시 회신을 기다려야 한다. 관련 부서의 직통 번호를 물어봐도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듣게 된다.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 홈페이지 내 ‘정보공개 신청’ 페이지에 접속해보지만 3월20일 현재 1주일 넘게 ‘먹통’이다.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청와대는 완전히 첩첩산중이다. 


기자라면 어떨까. <시사IN>은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 청와대 측에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취임 이후 ‘청와대 비서관 명단과 업무 내역’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물론 기자 신분을 밝혔다). ‘청와대 2인자’가 바뀐 만큼 정비된 비서진 명단과 업무 내역 등이 갖춰져 있으리라 보았다. 그러나 대변인실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홍보수석실은 ‘회신을 주겠다’라고만 답하고 일주일 넘도록 아무런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현직 ‘청와대 관계자’를 통하지 않는 한 ‘급행’으로 일을 처리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연합뉴스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공무원의 이름과 직위는 공개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청와대는 국익을 이유로 밝히지 않고 있다. 결국 행정부의 정보공개 포털 사이트인 ‘정부3.0’(www.gov30.go.kr)에 청와대 비서관 명단과 업무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3월13일 정보공개 신청이 접수되었지만, 신청 목적에 합당한 자료가 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왜? 그동안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는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를 대상으로 모두 29건의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청와대는 이 가운데 8건을 ‘공개’했다고 통보해왔는데, 그 내용이 어처구니없다. 가령 2013년 11월 대통령 비서실이 작성한 속기록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에 대해서는 ‘속기록을 작성하고 있음’이라는 답변이 전부다. 각종 행사, 조찬, 만찬 등 ‘대통령의 과거 일정’을 공개해달라는 요구에는 ‘청와대 홈페이지 참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홈페이지에는 정기적인 수석비서관 회의, 해외 순방 등 ‘정보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일정만 공개되어 있다. 사실상 ‘비공개’하겠다는 이야기다.


청와대 스스로 ‘공개’라고 밝힌 내용이 이 정도니, 웬만큼 민감한 내용은 말할 것도 없다. 정보공개센터는 2013년 12월 대통령 비서실 각 부서의 공무원 명단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가 보내온 내용은 비서관급 이상의 명단뿐이었다. 정보공개센터가 요구한 내용은 비서관 휘하의 행정관 등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청와대 직원’의 명단이었다. 올해 초 청와대 문건 파동의 배후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라고 말해 정국을 들쑤신 음종환씨는 청와대 행정관이었다. 


ⓒ연합뉴스

3월16일 이병기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는 직원 명단이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정보공개센터에 밝혔다. 반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9조는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의 ‘이름과 직위’를 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출입기자 ‘안테나’가 여의도로 향하는 까닭 


박근혜 정부가 ‘투명한 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각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도록 구축한 정부3.0 사이트에서도 정작 청와대 관련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이유는? 물론 청와대에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료를 검색하기 위해 로그인해 보면 대통령 비서실은 아예 공공기관 목록에서조차 빠져 있다. 목록에서 빠진 곳은 청와대(대통령 비서실·국가안보실·경호실)와 국정원뿐이다. 정부3.0을 운영하는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업무 특수성 때문에 청와대는 빠진 걸로 알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정보공개법은 별다른 정보공개 청구가 없어도 각 공공기관이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할 대상을 지정하고 있다. 이를 ‘사전정보공표 목록’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는 예·결산 현황, 업무추진비 현황, 비서관급 이상 인사 등 10개 항목을 ‘수시’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지해야 한다. 그러나 수석비서관이 아닌 비서관 인사에 대한 정보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3월 이후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무추진비 역시 월별 현황만 공개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내역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시사IN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는 어떨까.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청와대 출입기자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한 언론사 기자는 “비서관 인사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하는 건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새로운 사람이 눈에 띄어 대변인에게 물어보면 그제야 확인해주는 식이다. 누가 안 보이면 ‘나갔나 보다’ 하는 거고…. 공석인 통일비서관(3월26일 내정)에 대해 민경욱 대변인에게 여러 차례 질의했지만, ‘아직 온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는 게 전부다. 비서관이 이 정도니 행정관들 정보야 완전 깜깜이다.”


이 기자에 따르면 지난해 시끌벅적했던 윤전추 행정관 사건 역시 이런 비밀주의가 빚어낸 촌극에 가깝다. ‘윤전추 사건’은 영화배우 전지현씨의 개인 헬스 트레이너였던 윤씨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진 일이다. 청와대 행정관을 대통령의 개인 트레이너로 둔 것 아니냐는 논란이었다. 이 기자는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윤전추 행정관을 자주 ‘목격’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윤 행정관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윤 행정관에 대한 정보를 기자들에게 주지 않았다. 나중에 사건이 불거지고 난 뒤에야 수습하기 바빴다. 정부 초기부터 윤 행정관의 신상과 업무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이 정도로 파문이 커지지는 않았으리라는 이야기다. 


“과거 정부와 확연하게 다른 점은 청와대 내부에서도 정보가 유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 직원들끼리도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최근 청와대 행정관이 택시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누구인지 청와대 내부 취재로는 파악이 안 됐다. 옛날 같으면 대변인실 통해 해결할 사안인데….”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다. 지난 1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때 한 기자가 장관들의 대면보고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자 “청와대에 출입하시면서 내용을 전혀 모르시네요”라며 면박을 준 사건이다. 문제 될 것 없다는 투였다. 대다수 언론이 ‘장내 웃음 터져’ 식으로 넘어갔지만, 정작 상당수 기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청와대의 비밀주의에 앙금이 쌓인 터에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면박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청와대 출입기자의 안테나는 오히려 ‘여의도’에 맞춰져 있다. 새누리당의 친박계 인사로부터 나오는 청와대 관련 정보가 오히려 청와대보다 정확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윤상현 의원이 대표적이다. 당 핵심 보직을 지낸 그가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 ‘핫라인’을 가동한 것이 분명하다는 관측이 청와대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윤 의원이 이번에 대통령 정무특보로 기용되면서 기자들의 관심도 그쪽으로 쏠리고 있다(친박 배지 모아 ‘청와대당’ 만드나 참조).


입법부인 국회에서 청와대를 감사하는 기관은 국회 운영위원회다. 청와대는 국회의 정보공개 요구에는 적극 응하고 있을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대통령 비서실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자. ‘일반 현황’과 관련한 자료는 청와대 조직도, 예산, 토지 및 건물 현황을 보내온 게 전부다. 그나마 ‘정보값’을 쳐줄 만한 자료라고는 ‘대통령 비서실 인원 현황’이 유일하다. 이에 따르면 2014년 10월 현재 비서실에는 총 425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직급별로는 정무직 및 고위 공무원(수석비서관 및 비서관 등)이 74명, 행정관 및 6급 이하 공무원이 351명이다. 다시 말해 전체 대통령 비서실 직원 가운데 적어도 80%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이야기다.  


위 표는 <시사IN>이 그동안의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작성한 대통령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비서관 명단이다. 그런데 이 표에서도  빠진 부분이 있다. 비서관들의 실제 업무 내역이다. 박근혜 정부가 비서실의 ‘업무 분장’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탓이 크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비서실 업무분장’ ‘비서실 훈령’ 등을 ‘사전정보공표 목록’에 포함해 공개했다.


물론 상당수 비서관의 업무 내역은 ‘직책’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경계가 모호한 직책도 적지 않다.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비서관들의 경우 업무 영역을 뛰어넘는 일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살림(재정·행정 등)을 맡고 있지만,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참여하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참여했다. 이 비서관은 청와대 밖의 공공기관장 인사가 논의될 때도 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의 일정과 메시지를 담당하는 것 이외에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대통령을 보좌했다. 외교 관련 주요 보고서가 거의 그의 손을 거쳐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의 경우 대통령 수행 등이 공식 업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무·민정 파트의 일을 처리했다는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결국 문고리 권력 논란 역시 투명한 업무 분장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정보 비대칭’이 불러온 인사 참극 


청와대는 3월25일 <시사IN>이 정보공개를 청구한 비서관 명단과 업무 내역에 대해 ‘부분 공개’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명단은 공개했지만 각 비서관의 업무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원론 수준의 업무 분장 소개에 그쳤다. 비서관의 경력은 ‘비공개’했다.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사무국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비서실의 직무 책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업무 분장이나 투명한 예산 집행을 담보하는 입찰현황 등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부3.0’을 기치로 산하 기관에는 투명한 행정을 강요하면서 정작 청와대 정보는 꽁꽁 숨기는 ‘유체이탈’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행정학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관리형과 권력위임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형적인 ‘관리형’으로 분류된다. 비서실 등 산하 조직을 일일이 챙기는 ‘만기친람’ 스타일이다. 관리형 리더십의 큰 부작용이 ‘정보의 단절’이다. 리더가 정보를 독점하는 만큼 조직원들은 정보에 무지하다. 정보를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고, 정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능력도 없다. 국가권력의 최상층부에서 ‘정보 비대칭’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 전문가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 실패는 권력 내부의 정보 비대칭에서 비롯된 점이 크다”라고 말했다. 



기사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03